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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방중 앞둔 중국, 대미 비판 낮췄다…왕이, ‘세계 다극화’는 한층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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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태·관세 갈등에도 美 실명 비판 자제
미중 관계 관리 강조…‘다극화 세계질서’부각
헤럴드경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중국이 대미 비판 수위를 낮추며 대화 국면 조성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보호주의 기조도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은 공개 석상에서 미국을 정면으로 겨냥하기보다는 미중 관계 관리와 ‘다극화 세계질서’ 구상 부각에 방점을 찍었다.

8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이 교류하지 않으면 오해와 오판만 키우게 되고, 충돌과 대결은 세계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며 “양국은 서로를 바꿀 수 없지만 공존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이 이달 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왕 주임은 최근 러시아·이란·이스라엘 외무장관들과의 통화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미국을 직접 겨냥한 표현을 삼갔다.

대신 왕 주임은 양국 정상 간 소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양국 정상이 직접 나서 최고 수준에서 양호한 왕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중미 관계 개선과 발전에 중요한 전략적 보장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분명 중미 관계의 중요한 해”라며 “고위급 교류 일정이 이미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양국이 이를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며, 존재하는 이견을 관리하고, 불필요한 방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 또는 고위급 접촉을 앞두고 중국이 의도적으로 외교적 언어를 다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 문제를 둘러싼 별도 질문에서도 왕 주임은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중동 문제 해결 원칙으로 주권 존중, 무력 남용 반대, 내정 불간섭, 정치적 해결, 대국의 건설적 역할 등을 제시했지만 미국 실명을 언급하는 방식의 비판은 피했다.

무역·관세 문제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됐다. 왕 주임은 “일부 국가가 대대적으로 관세 장벽을 세우고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을 끄는 것과 같다”며 “결국 자신에게도 해를 입힐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이라는 표현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중국의 이런 기조는 이번 양회 기간 전반에 흐르고 있다. 리창 총리가 지난해 정부업무보고에서 “모든 형식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며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미국을 연상시키는 직접적 표현의 비중을 줄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미중 정상 외교를 앞두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미국 비판을 줄인 자리는 ‘다극화’ 메시지가 채웠다. 왕 주임은 미국 측에서 제기한 ‘미중 공동통치(co-governance)’ 프레임에 대해 “중국과 미국이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행성에는 190여개 국가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원과 공생이야말로 인류 사회의 본래 모습이고, 다극과 공존이야말로 국제 구도의 마땅한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또 “중국은 강대국이 되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하는 옛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강대국 공동통치’ 논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일극 체제를 넘어 중국이 주창해온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를 다시 한번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왕 주임은 아시아를 둘러싼 중국의 역할론도 부각했다. 그는 “중국이 일부 전통적 강대국들처럼 주변에 세력 범위를 긋고 진영 대결을 도발하거나 이웃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오늘날 아시아가 이처럼 안정적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이 지역 안보와 질서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날 왕 주임의 메시지는 선명했다. 미국을 향한 정면 비판은 한발 물리고, 트럼프 방중을 앞둔 미중 관계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 중심 질서를 대체할 새 국제질서 구상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중국의 속내도 분명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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