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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권영전 특파원 = 미국의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주로 중국 등 미국의 적성국 기업에 적용되는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미국을 양분하고 있는 정치적 대립이 AI 업계에서도 비화하는 모양새다.
미 국방부와 앤트로픽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AI 윤리와 국가 안보' 사이의 거대한 대립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이른바 '워크'(woke·진보적 가치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용어) 기업에 대한 공격과 글로벌 비즈니스 셈법이 얽힌 실체 없는 싸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단순 기술문의 했다가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까지
이번 사태의 도화선은 지난달 초 미군이 벌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의 생포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팔란티어와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가 사용됐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앤트로픽 관계자가 팔란티어 측에 이에 대해 문의했는데, 팔란티어가 이 사실을 국방부에 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앤트로픽 측은 당시 팔란티어와의 대화에 대해 "엄연히 기술적인 사안에 대한 정기 논의"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방부는 민간 기업의 군사작전 개입이나 항의로 받아들였다.
결국 국방부는 앤트로픽에 '합법적인 모든 용도'에 제한 없이 사용하겠다며 앤트로픽에 AI의 군사적 활용 범위를 전면 개방하라고 요구했으나, 앤트로픽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다. 공급망 위험 기업이 되면 앤트로픽은 국방부뿐 아니라 미군과 사업을 하는 계약업체·공급업체·파트너 등과도 거래할 수 없게 된다.
미국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파이브아이즈, 한국 등 미국 동맹국들과의 비즈니스에도 심각한 타격을 줘 자유 진영 안보 생태계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 이면의 정치·비즈니스 셈법
국방부와 앤트로픽은 쟁점 사항에서 큰 간극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체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앤트로픽은 군사나 안보 목적의 AI 사용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작전 수행시마다 특정 목적으로 AI를 사용해도 되는지 승인받으라는 입장도 아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6일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군사적 결정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국방부가 내린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우리는 특정 군사작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고 임시방편적 방식으로 우리 기술의 사용을 제한하려 시도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대규모 국내 감시와 자율살상무기에는 자사 모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안전장치를 요구했다.
美 국방부 |
이와 관련해 숀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국방부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감시에 AI를 활용할 의사가 없다"며 "인간 개입 없이 작동하는 자율 무기 개발을 위해 AI를 사용하려는 뜻도 없다"고 단언했다.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이와 같은 (국방부가 대규모 감시·자율살상 무기에 AI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좌파 성향의 언론이 유포하는 허위"라고 비판했다.
두 사람의 발언에 비춰보면 국방부와 앤트로픽 사이에는 뚜렷한 쟁점이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양자 간 갈등이 이처럼 극한으로 치달은 것은 정치적 이해득실과 비즈니스 셈법이 개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로서는 민간 공급 기업이 군의 AI 사용에 대해 '족쇄'를 채우려 하는 모습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고, 실제 작전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여기에 미국을 양분하는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진보 성향을 드러낸 기업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은 절대로 급진 좌파적인 워크(woke) 기업이 우리 위대한 군이 어떻게 전쟁에서 싸우고 승리해야 하는지를 좌지우지하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번 갈등의 본질이 정치 대립에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 입장에서 강하게 대립각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으로서도 국방부의 요구를 선뜻 들어주지 못한 데는 자사 브랜드 가치와 전 세계 시장의 사업 기회에 대한 고심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방부의 압박을 수용했다면 당장 안보 관련 공급망은 지킬 수 있겠지만, 인권 관련 규제가 엄격한 해외 시장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앤트로픽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를 핵심 브랜드 정체성으로 내세운 상황에서 그와 같은 행동은 기회주의적으로 보여 시장의 외면을 받고 회사의 철학을 믿고 합류한 직원들의 이탈을 가져오게 될 우려가 있다.
앤트로픽은 최근 AI 관련 규제를 강화하자는 슈퍼팩(Super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에 2천만 달러(약 287억원)를 기부하는 등 주(州)별 AI 규제를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
◇ 실리콘밸리도 양분 대립
실리콘밸리 AI 업계의 여론도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최근 국방부의 기밀 업무 사용 승인을 받은 xAI의 일론 머스크 CEO는 X에 "앤트로픽은 서구 문명을 증오한다"고 주장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보조를 맞췄다.
머스크 CEO는 이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앤트로픽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으며 최근에는 '인류'라는 뜻을 지닌 앤트로픽을 '미스앤트로픽'(Misanthropic·인류혐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반면 앤트로픽의 경쟁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앤트로픽이 고수하는 입장에 대해 동조하면서 자신들도 앤트로픽과 같은 조건으로 국방부와 협상을 논의함으로써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오픈AI 공동창업자 출신인 일리야 수츠케버도 X에서 "앤트로픽이 확고한 입장을 유지한 것은 고무적"이라며 앤트로픽 지지 여론에 힘을 실어줬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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