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EPA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을 끝내는 시점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합동 전쟁을 펼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간 긴밀한 공조를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시점과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전쟁의 시작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립적인 결정이 아니라 네타냐후 총리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전쟁의 끝 역시 네타냐후 총리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바라는 방식으로 전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과 네타냐후 총리가 없었더라면 “이란이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협력해서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던 나라를 파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식 시점을 정할 때 네타냐후 총리도 발언권을 갖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자 “어느 정도 상호적인 결정이 될 것”이라며 “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적절한 시점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발언권을 갖지만,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이 공습을 중단한 후에도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답변을 피하면서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8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상공이 석유 저장고 폭발 사고로 인해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이번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이란을 치자는 네타냐후 총리의 ‘40년 숙원’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이 아닌 ‘이스라엘에 임박한 위협’ 때문에 참전한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 전쟁이 미국의 국익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고조됐다.
전문가들은 전쟁의 시작을 둘러싼 논란처럼, 전쟁 종식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독립적인 결정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최종 목표가 매우 다르며, 이 경우 더 큰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쪽이 전쟁의 흐름을 좌우하는데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러미 보웬 BBC 국제뉴스 편집장은 “네타냐후는 이란 내부에 혼란과 위기가 촉발되더라도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면서 “걸프국들이 이란의 혼란에 신경쓰느라 바빠지면 이스라엘을 위협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 트럼프는 잃을 것이 많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휘발유 가격을 신경써야 하고, 세계 강대국으로서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이 전쟁에서 그가 바라는 방식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양국의 비대칭성은 이스라엘이 지난 7일 이란 내 석유 저장시설 30여 곳을 공습하자 트럼프 행정부가 당혹스러움을 표했다는 액시오스 보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 저장시설이 불타는 이미지가 유가 불안 심리를 자극해 그렇지 않아도 치솟고 있는 국제 유가를 더욱 끌어올릴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이스라엘에 강하게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정권 붕괴 위해 무슨 대가든 치르려는 이스라엘 폭주 막을 수 있을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차기 정권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 이란 체제가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경우 국제사회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리는 순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재건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 붕괴’를 양보할 수 없는 이번 전쟁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역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농축 우라늄을 포기하고, 미국에 이란 석유산업의 일부를 양보할 의향이 있는 현 정권 내부 온건파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구상은 이날 미·이스라엘에 의해 사살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보다 강경한 그의 차남 모즈타바가 차기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꼬일대로 꼬인 상태다.
이란의 차기 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 하메네이. AP연합뉴스 |
이스라엘은 이란에 원하는 정권을 세울 수 없다면 차라리 이란을 리비아 같은 내전 국가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할 수 있다. 텔아비브 국가안보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대니 시트리노비츠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 붕괴를 위한 대가라면 이란의 내전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쿠르드족 군사 지원 방안을 검토한 것이 네타냐후 총리의 작품인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앞서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라크 쿠르드족 지도자와의 통화는 지난 몇달간 네타냐후 총리가 물밑 로비를 벌인 끝에 성사된 것이라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이 참전할 경우 이란 내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분열하면서 이란이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결국 군사 지원 방안을 철회했다. ‘이란의 리비아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피하려는 중동 전쟁 ‘수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이 같은 동상이몽은 앞으로도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6월 이란과 벌인 ‘12일 전쟁’과 그해 7월 시리아 공습 당시에도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역내 분쟁 확대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백악관은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애칭)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항상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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