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호연기자] “경제 전시 상황이다. 속도가 생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한국의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며 신속한 추경 편성을 지시했다. 중동발 고유가와 민생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명분 아래 ‘전쟁 추경’이라는 엄중한 단어까지 등장했다. 경제 전시 상황을 염두에 두라는 대통령의 지시후, 당정은 추경 속도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하지만 경제 현장 일각에선 염려스러운 시선도 나온다. 728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본예산 집행이 시작된 지 석 달도 안 돼, 추경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8.1%나 늘린 규모다. 이 증가분을 충당하기 위해 109조원의 적자 국채까지 발행할 계획이다.
지표로만 본다면 시중 유동성은 부족하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을 뜻한 광의통화(M2) 1월 잔액은 410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급 수준을 기록했다. 주가 상승으로 투자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면서 M2 규모는 최근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추경을 통해 재정을 확대할 경우 자칫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다.
환율 등 거시경제 지표도 아직은 불안한 상황이다. 최근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다. 종가기준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이다. 이날 이란 조기 종전 기대에 환율은 1490원대까지 떨어졌지만 변동성은 여전히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상태다.
재정 확대와 통화량 증가가 동시에 이뤄지면,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상승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서민 경제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들썩이게 할 수 있다. 대통령 역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연일 고강도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 않은가.
야권 일각에서는 이번 추경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표퓰리즘’의 전초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대통령이 강조한 ‘지방 우대 원칙’이 자칫 지역구 민원 해결용 예산이나 선심성 사업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추경 규모가 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통상 추경은 면밀한 사업 계획과 소요 예산이 산출된 뒤 규모를 확정하는 법이다. 그런데 20조원이라는 ‘가이드라인’이 먼저 흘러나왔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정밀한 진단이다. 전시 상황이라는 급박한 수사(修辭)때문에 신중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4100조원의 유동성 수준을 고려한다면 추경에 대해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빚을 내지 않고 집행하겠다던 ‘착한 추경’의 끝이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이라는 ‘수퍼 추경’으로 이어졌던 전례가 있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신중한 추경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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