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대해 유럽과 일본 등 동맹국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 전쟁에 휘말릴 위험을 감안해 즉각적인 파병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도 즉답을 피하며 신중한 모습이다. 미-이란 전쟁이 미국과 동맹국들의 균열을 가져와 유럽 및 아시아에서 기존 안보 질서를 저해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고 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6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회의 직후 “EU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EU는 이날 홍해에서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는 아스피데스(Aspides·방패) 작전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은 작전 확대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칼라스 대표는 “누구도 이란 전쟁에 적극 나서길 원치 않는다. 현재로선 아스피데스 작전 권한을 변경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했다. 또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이날 “우리는 군사 수단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데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전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메르츠 총리는 미국이 이란 공습 전 EU와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 공군기지 제공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영국도 파병에 소극적인 태도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집단 계획을 세우기 위해 유럽 파트너를 비롯해 모든 동맹국과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나토의 임무는 아니다. 영국은 더 확전된 전쟁으로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타머 총리는 “영국군을 위험 지역에 파병하려면 아주 최소한의 합법적인 근거가 있고 제대로 숙고된 계획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회 승인 등 국내 정치 문제로 파병이 쉽지 않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중해에 핵추진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등 유럽 주요국 중 미-이란 전쟁에 적극 대응했던 프랑스도 한발 빼는 분위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상선 호위 임무는 전쟁의 가장 뜨거운 단계가 종료된 이후 (가능하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카트린 보트랭 프랑스 국방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함선을 보낼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리스,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하며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로프 예턴 네덜란드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단기로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했다.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일본의 고심은 더 깊어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16일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에 대해 “(미국 측에서) 아직 요구하지 않아 대답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일본과 관계 있는 선박, 승무원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지, 무엇이 가능할지 등을 법적인 관점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17일 일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과 관련해 자위대를 보내는게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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