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카자흐 국민투표 현장스케치] 미래 향한 첫걸음… 아스타나 추위 녹인 변화의 열망

댓글0
아주경제

3월 1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내 알 파라비 학생 궁전 투표소를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박세진=swatchsjp@ajupress.com]



아침부터 아스타나의 하늘은 흐린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기온이 조금 풀릴 것이라던 예보와 달리 영하 4도의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고, 대로변에는 매연과 먼지로 얼룩진 눈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인도 위는 얼음이 얇게 얼어붙어 시민들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이러한 날씨에도 투표소로 향하는 행렬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외투 깃을 세운 시민들은 추위 속에 지체하지 않으려는 듯 분주한 총총걸음으로 투표소를 향했다. 그 활기찬 움직임 사이로 변화를 향한 도시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중앙아시아의 거인으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인구 약 2,040만 명에 달하는 지역 내 최대 경제 대국이다. 2026년 기준 명목 GDP는 3,2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50대 경제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간 석유와 광물 등 풍부한 자원에 의존해 "구산업" 성장을 구가해왔으나, 최근 카자흐스탄은 자원 의존형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2029년까지 GDP를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 아래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가공업,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금융을 아우르는 "신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의지는 올해 초부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 1월 18일, 세계적으로도 선제적인 조치로 평가받는 "인공지능법(AI Law)"을 본격 발효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6년을 "디지털화 및 인공지능의 해"로 선포하며 국가 역량을 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 예산 집행에 전면 도입된 "디지털 텡게(Digital Tenge)"는 재정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며 부패 척결과 신뢰받는 금융 시스템 구축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성취는 단순히 기술적인 보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신산업 대전환의 선봉이라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지도부는 첨단 하이테크 경제가 아날로그 방식의 정치적 토대 위에서는 결코 꽃피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이번 국민투표는 국가 시스템 전반의 아키텍처를 지금 도입 중인 디지털 시스템만큼이나 민첩하고 투명하게 재구축하려는 시도로, 새로운 산업 피벗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정치와 사회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아주경제

3월 1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내 알 파라비 학생 궁전 투표소에서 한 고령의 여성이 국민투표 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박세진=swatchsjp@ajupress.com]



이날 진행된 국민투표는 이러한 경제·사회적 도약을 뒷받침할 정치적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다. 웅장한 유리벽이 돋보이는 '알 파라비 학생 궁전' 내부에 마련된 제50호 투표소는 바깥 날씨와 달리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였다. 이번 투표는 한국의 주요 파트너인 카자흐스탄이 기존의 초강력 대통령 중심제에서 벗어나 의회와 권력을 나누는 분권형 모델로 전환하고, 단원제 의회인 '쿠룰타이' 신설과 부통령직 복원을 결정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곳에서 만난 로자(61) 씨는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데 시대가 멈춰 있을 수는 없다"며 "이번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로자 씨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묻어 있었다. "내 나이 벌써 예순하나로 시간이 많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그녀는 특히 시민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투표 전 상세한 정보를 모두 숙지했다며 결과에 대한 담백한 낙관을 내비쳤다.
아주경제

3월 1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인근 제3 중학교 투표소 내에서 전통 밴드가 국민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세진swatchsjp=@ajupress.com]



아스타나 인근의 주거 단지 코쉬(Qoshy)에 위치한 제3 중학교 투표소는 한층 더 활기찬 분위기였다. 복도에는 카자흐스탄 전통 악기인 '돔브라'의 경쾌한 선율이 울려 퍼지며 투표 현장을 하나의 문화적 축제로 만들었다. 입구 한쪽에는 주민들이 소박하게 차린 가판대에서 꿀과 로열젤리, 전통 과자 등을 판매하며 이웃들이 안부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주경제

3월 1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인근 제3 중학교 앞에서 한 상인이 판매용 벌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세진=swatchsjp@ajupress.com]



이곳 투표 관리위원장 카이사르 세이풀린(39) 씨는 "현장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3월 1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인근 제3 중학교에서 알마스 제센베코프 씨가 아들과 함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세진=swatchsjp@ajupress.com]



아들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알마스 제센베코프(38) 씨는 이번 투표를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업그레이드라고 정의했다. 그는 "헌법은 모든 법의 뿌리인 만큼 이 뿌리가 바뀌면 다른 법률들도 자연스럽게 선순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정보를 직접 번역하며 미리 공부했을 정도로 이번 투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교육 전문가 막사트 무라트베쿨리 무하메드자노프(35) 씨는 오늘을 카자흐스탄이 독립 초기의 단계를 지나 성숙한 국가로 접어드는 상징적인 날로 보았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권리'가 명시된 것을 두고 미래 세대를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면역력을 갖추는 과정이라며 반겼다. 그는 "단원제 의회로의 전환은 대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아스타나(카자흐스탄)=박세진 기자 swatchsjp@ajunews.com

- Copyright ⓒ [아주경제 ajunews.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봐야할 뉴스

  • 파이낸셜뉴스김진태 강원지사 “원주권 미래산업 육성”...도정보고회 7000명 운집
  • 머니투데이"메타, 직원 20% 감축"…저커버그 'AI 올인' 위해 구조조정 하나
  • 이투데이제주 어선 화재 침몰, 선원 2명 실종⋯야간 수색에 총력
  • 아주경제李대통령 '사막의 빛' 작전에 "범정부 원팀으로 의미있는 성과"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