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공습을 받은 이란 석유 수출 요충지 하르그섬./AFP 연합뉴스 |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가 14일 이란의 핵심 석유 수출 기지인 하르그섬을 공습했다고 밝히면서 지난달 28일 시작된 이란 전쟁이 한 차원 다른 개념으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을 공습하면서도 유독 하르그섬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섬을 잘못 공격했을 경우 가뜩이나 치솟고 있는 국제 유가에 충격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란 원유 구매의 주 고객인 중국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극도로 민감한 정치·경제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르그섬에 대한 공격은 에너지 경제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심 깊은 전략적 요충지
중부사령부는 하르그섬을 공습해 기뢰 저장시설, 미사일 벙커 등 90개 이상의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하르그섬을 가리켜 ‘이란의 왕관 보석(crown jewel·가장 귀중한 자산)’이라고 불렀다. 석유 관련 시설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섬은 페르시아만에 있는 석유 수출 터미널이 위치한 곳이다. 이란 해안에서 26㎞, 호르무즈 해협에서 북서쪽으로 483㎞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산호섬의 크기는 뉴욕 맨해튼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곳이 이란 석유 수출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유는 지형 때문이다. 이란 해안선 대부분은 진흙질이고 수심이 너무 얕아 석유 산업에 쓰이는 초대형 유조선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하르그섬은 수심이 깊다. 중세 시대 진주와 농산물이 통과하던 무역항이었던 이곳은 1960년대 팔레비 국왕 시절,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와 합작 투자로 석유 터미널로 개발됐다. 아바즈, 마룬, 가치사란 등 이란 최대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르그섬으로 이동한 뒤, 유조선에 실려 호르무즈 해협과 아라비아해를 거쳐 수출된다. 강철로 된 담벼락이 있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삼엄한 경비를 선다.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에 올라온 이란 석유수출기지 하르그섬 폭격 영상. ./트루스소셜 |
◇이란 석유 수출 90% 담당
이란 국가 경제에서 이 섬의 중요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4.5%를 담당하는 이란 석유 수출량의 약 90%가 이 섬을 통과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은 올해 하루 평균 1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고 그중 155만 배럴이 하르그섬을 통했다. 전쟁 직전 이란은 하루 수출량이 약 217만 배럴에 달했고, 2월 16일 주간엔 역대 최고치인 하루 379만 배럴을 출하하기도 했다.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하르그섬은 약 3000만 배럴의 저장 용량을 갖추고 있고, 이달 초 약 1800만 배럴의 원유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이 섬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공격을 받았을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하르그섬에 있는 시설들은 고도로 노출되어 있다. 남쪽에 밀집된 수십 개의 저장 탱크, 초대형 유조선에 석유를 싣기 위해 심해로 뻗은 긴 부두, 근로자 주거지, 본토와 연결되는 소규모 활주로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해저 파이프라인은 터미널과 이란 최대 유전을 연결한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로부터 폭격을 받은 바 있다. 이스라엘도 그동안 이 섬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이스라엘이 하르그섬에 있는 모든 유전과 산업을 파괴해야 하며 이란 경제를 마비시키고 정권을 무너뜨릴 방법”이라고 했다. 다만 공격으로 인한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해 국제 유가를 크게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 최고 투자 책임자 댄 피커링은 로이터에 “하르그섬의 인프라가 파괴되면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하루 200만 배럴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전 미국 이란 담당 부특사 리처드 네퓨는 FT에 “이 섬 없이는 이란 경제가 바닥을 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미국도 그동안 하르그섬 공격을 ‘레드 라인’으로 삼아 왔다.
5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맥딜 공군기지에 있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 본부에서 브래드 쿠퍼 사령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
◇중국 석유 수입에도 큰 차질
이란 석유 수출 중 대부분이 중국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하르그섬 공격은 중국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은 이란 해상 수출 석유의 80% 이상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르그섬이 망가지면 중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던 물량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 로이터는 이 섬이 “중국의 핵심 석유 공급원”이라고 했다.
현재 미국은 하르그섬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석유 관련 시설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만약 석유 시설까지 타격했을 경우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백악관은 지상군을 통해 하르그섬을 점령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점령에 성공하더라도 본토에서 공격을 퍼부을 이란을 막기 위해 작전 범위가 계속 확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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