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11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해안 마을은 오랫동안 주민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지만, 오염토를 걷어내는 방대한 제염 작업과 정비를 통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피난령이 점차 해제되자 이곳을 재건하기 위해 정착하는 주민들도 점점 늘고 있다. |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나, 후쿠시마 원전 인근 해안 마을에 다녀왔다. 가기 전엔 무척 궁금했다. 그곳에 돌아가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방사능 피폭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 일본인 지인에게 물었더니 “일본인에게 고향의 의미는 남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편으론 ‘아무리 고향이라도…’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 역시 대다수 사람들처럼 후쿠시마를 금단의 땅으로 여겼다. 일본 편의점에서 파는 저렴한 음식 중에는 후쿠시마산이 많다는 소문을 믿고 피하는 편이기도 했다. 이번 출장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틀간 후쿠시마에서 마을 재건에 나선 주민들을 만났고, 방사능 수치를 직접 측정해 보면서 생각이 서서히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쓰나미로 가족과 이웃을 잃고, 삶의 터전이 죽음의 땅이 되는 아픔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들에게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원전과 가장 가까운 후타바에서 만난 다카쿠라 이스케씨는 “내 고향을 내 손으로 직접 살려 후대에 물려주고 싶었다”면서 목이 메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이들에게 고향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방사능 걱정에 대한 의문도 풀 수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정부가 과학적 검증에 따라 피난령을 해제한 만큼 큰 위험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 일본 정부는 2011년 원전 사고 직후부터 6년간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내는 대규모 제염 작업을 통해 방사선량을 평균 수준으로 낮췄다. 직접 측정기로도 확인했다. 하지만 거대한 산림 구역은 아직도 제염 대상에서 제외된 채 자연 반감 및 회복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귀환이 어려운 지역도 일부 남아 있다.
이곳에 방직공장을 세운 아사노 마사미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을수록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우리는 이곳을 재건의 상징으로 만들 거다.” 체르노빌처럼 버려진 땅을 기어이 되살리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다. 또다시 쓰나미가 올지 모르는 곳에 왜 왔느냐는 질문도 해봤다. 다케다 스미씨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느냐”며 담담하게 답했다. 도미오카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호소카와 준이치로씨의 한마디도 가슴에 꽂혔다. “그런 재난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곳에 왜 왔느냐”는 질문은 결국 “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에 사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북한 같은 나라를 머리 위에 두고 사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후쿠시마에 다녀와서 또 한 번 배웠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묵묵히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도쿄=류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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