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3.12. AP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현재 해상에 있는 일부 러시아산 원유 등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한다고 12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들 선박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 제품에 대해 4월 11일까진 판매를 승인한다는 것으로, 이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급등한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존스법(Jones Act)’을 일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항구 간 운송되는 화물은 미국 소유 선박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면제하면 에너지 운송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치솟는 유가를 잡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이 유가를 안정화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단기적으론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 영향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근본적인 시장 구조를 바꾸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 美재무 “공급 확대 위해 러 원유 구매 일시적 허가…단기 조치”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일쇼크가 장기화할 수 있단 관측까지 더해지면서 석유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2일 기준 미국 내 휘발유 소매가 평균은 갤런당 3.6달러(약 5364원)로, 최근 한 달 새 22% 이상 상승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이번 주 미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10명 중 8명은 최근 몇 주 사이 주유소 가격 변화를 감지했다고 답했다.
유가가 급등하며 미국 내 여론이 동요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미국을 포함해 국제에너지기구(IEA) 32개 회원국은 앞서 11일 전략비축유 4억 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긴장감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잦아들지 않자, IEA 역사상 물량 규모로는 역대 최대의 비축유 방출 계획을 밝힌 것이다.
12일에는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 제품에 대해 4월 11일까지 판매를 승인하는 새로운 일반 면허도 발급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으로부터 석유 수출 등 관련해 강력한 제재를 받아왔는데, 한시적이나마 일부 제재를 풀어주겠단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X(엑스)에 “기존 공급의 글로벌 도달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재무부가 현재 해상에 묶여 있는 러시아 원유를 각국이 구매할 수 있도록 일시적 허가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를 “매우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조치가 러시아 정부에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제공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같은 날 팟캐스트 인터뷰에선 이란과의 전쟁으로 러시아가 경제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생긴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존스법 면제’ 카드까지 컴토 중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가안보를 위해 필수적 에너지 제품과 농산물이 자유롭게 미국 항구들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백악관이 30일간 존스법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그 대상은 원유·휘발유·경유·액화천연가스·비료 등이라고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 “전략비축유 방출, 존스법 면제 등 효과 제한적” 지적도
미국이 유가를 잡기 위해 꺼내 든 카드들의 한계가 뚜렷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존스법 면제에 대해 “현재처럼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선 그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봤다. 시장조사기관 제프리스 역시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수출 제한 조치나 존스법 면제, 전략비축유 방출 등 긴급 조치들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이었다”며 “정치적으로 장기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고 평했다.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완화한 것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이 제기됐다. 상원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초래한 전쟁의 경제적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췄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번 결정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를 처벌하려는 미국의 노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조치”라고 꼬집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세계에서 단연코 가장 큰 석유 생산국”이라며 “따라서 유가가 오르면 우리는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대통령으로서 나에게 훨씬 더 큰 관심사이자 중요 사안은, 사악한 제국인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해 중동, 나아가 전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나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유가가 급등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핵무기 제거’란 이번 전쟁의 명분을 내세우며 이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단 점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장 유가가 폭등해 미국 내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발언 자체가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인식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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