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중에도 한국·중국·일본 등 전 세계 16개국에 관세 부과를 염두에 둔 무역법 301조 조사에 돌입했다. 위법 판결을 받은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 정부는 주요국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적극 협상한다는 방침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1일(현지 시간) 관보에서 “제조업 과잉생산 문제와 관련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유럽연합(EU)·베트남·대만·인도 등 16개국을 대상으로 지목했다.
USTR은 한국에 대해 “전자 장비, 자동차 및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등을 중심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정부도 석유화학 부문에서 생산능력 축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USTR은 17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각계 의견을 접수해 5월 5일 공청회를 연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부과된 10% 글로벌 관세 시한(7월 하순) 전에 조사를 끝내는 게 목표”라고 말해 그 전까지 관세 부과 기준과 규모를 결론낼 것으로 보인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조사 개시 발표 후 브리핑에서 “미국의 중점 목표는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전의 관세 수준을 복원하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고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미국 측과 적극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USTR 발표 비중을 보면 이번 제조업 과잉생산 조사는 중국·EU 등이 주요 타깃인 것으로 보인다. USTR은 중국에 대해 “무역흑자가 지난해 1조 2000억 달러를 넘어 전 세계 무역흑자의 70%를 차지했다”며 이를 구조적 과잉생산의 증거로 제시했다.
중국 싱크탱크 중국세계화센터(CCG)의 허웨이원 연구원은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이번 조치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무역 정책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패권적 사고방식을 반영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미국은 노동과 디지털 분야로 조사 대상을 넓혔다. 그리어 대표는 “각국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별도의 301조 조사를 12일 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조사는 약 6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한국이 강제 노동 여부를 따져야 하는 셈인데 규제의 실효성을 어디까지로 규정할지 논란이 될 수 있다.
디지털 규제 조사에는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어 대표는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책정, 수산물 및 쌀 시장 접근성, 해양 오염 등 환경문제 등이 추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의약품의 경우 USTR은 지난해 3월 31일 발표한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미국 업계는 한국의 약가 결정 방식과 보험급여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고 적시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이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도 확고하다.
한편 미 법무법인 윌머헤일의 로런 맨델 국제무역 부문 파트너변호사, 트로이 스탠거론 카네기멜런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서울경제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사에 대해 “대법원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도 관세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쿠팡과의 연관성에 대해 맨델 변호사는 “미국은 자국 기업에 차별적 대우를 하는 외국 정부 관행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쿠팡은 그중 하나일 뿐”이라며 영향력을 평가절하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은 “미국의 관점에서는 쿠팡이 본사도 미국에 있고 연구개발(R&D)도 미국에서 수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쿠팡 사업의 90%를 한국에서 한다는 점은 전혀 관심 없다”고 지적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은 “한국이 대미 투자를 단행할 때는 소형모듈원전(SMR) 등 한국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차세대 기술 프로젝트를 선택해야 한다”며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돈만 쓰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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