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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10년 만에 같은 자리서 AI와 다시 마주하다…"대결에서 협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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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1시 이세돌 9단(오른쪽)이 이승현 인핸스 대표와 바둑모델 시연 후 대화하고 있다. / 사진=인핸스


알파고와의 세기적 대국이 열렸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세돌 9단이 10년 만에 다시 AI와 마주 앉았다. 이번에는 승패를 가리는 승부가 아니었다.

에이전틱 AI 스타트업 인핸스(Enhans, 대표 이승현)는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아라홀에서 이세돌 9단과 함께 '에이전틱 AI 시대(The Age of Agentic AI)'를 주제로 글로벌 기술 시연 행사를 개최했다. 2016년 3월 9일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맞붙었던 바로 그 날짜, 바로 그 장소에서 행사를 연 것은 의도된 연출이었다. 이번 행사는 기념식이자 제품 발표회였으며, 동시에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기도 했다. 인간 대 기계라는 대립의 서사는 이제 끝났다는 것. 앤트로픽(Anthropic),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공식 스폰서로 이름을 올렸고, 행사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무대에 오른 이세돌 9단은 첫마디부터 달라진 10년을 짚었다. "10년 전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AI)과 대결을 했는데, 오늘은 제가 AI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게 됐네요." 이날 행사의 핵심은 이세돌 9단이 인핸스의 AI 에이전트와 협업해 바둑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그가 '유아'라고 이름 붙인 AI 에이전트에게 원하는 바둑 프로그램의 구성과 콘셉트, 디자인 방향을 음성으로 주문하자, 에이전트는 자료 조사를 거친 뒤 코딩·디자인 등에 특화된 AI 모델에게 일감을 나눠줬다. 초보용(9×9)과 일반용(19×19)으로 구분된 바둑 프로그램이 완성되기까지 20여 분이 걸리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향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구성이었다.

시연은 바둑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순서에서 단 하나의 음성 명령이 복수의 특화 에이전트를 동시에 작동시켰다. 하나는 실시간 웹 리서치를, 다른 하나는 기획을, 세 번째는 코드 작성과 배포를 담당했다. 경쟁사 제품 조사, 가격 비교, 구조화된 보고서 생성까지 수동 코딩이나 별도의 시스템 조작 없이 자율적으로 완료됐다.

직접 만든 AI와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은 "그 당시 알파고의 수준은 넘어섰다. 사람이 이기기 힘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즉석에서 만든 AI 모델과 함께 바둑을 둘 수 있을 줄은 3~4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며 "코딩 배경지식이 없는 개인도 이렇게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시연 전 우려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처음에는 행사가 제대로 안 될까 봐 정말 많이 걱정했는데, 수십 분 만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AI와 협업해서 나아가는 걸 이 자리에서 잘 보여준 것 같다."

10년 전을 회상하는 발언도 솔직했다. "어떤 수를 두더라도 결국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무제한으로 대국을 해도 이기지 못하겠다는 절망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인간 바둑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사람이 한 수를 둘 때는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 라이벌과의 기억, 대국 경험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AI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바둑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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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핸스


행사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그의 시각은 일관됐다. "AI가 개성이나 감정, 스토리가 없다고 이전에 말했는데, 오늘 협업에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바둑에는 기술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와의 기억, 감정, 사적인 유대감이 담겨 있다. AI는 그런 것이 없다." AI를 침체된 바둑 시장의 돌파구로 기대하는 시각도 내비쳤다. "AI를 통해 바둑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면 지금 굉장히 침체된 시장에 기대를 해볼 수 있다. 바둑 선생 역할을 AI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현 인핸스 대표는 이 순간을 역사적 맥락 위에 올려놨다. "알파고 대국이 인간과 AI의 경쟁을 상징했다면, 오늘은 협업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온톨로지, 에이전틱 AI, LAM(대형 행동 모델) 기술을 표준화해 전 세계 기업이 AI와 협업할 수 있는 AI OS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AI 에이전트의 신뢰성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할루시네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온톨로지 기술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개인 서비스 상용화 시점에 대해서는 "대기업→중소기업→개인 순으로 확장하는 로드맵은 정해져 있으나, 시장에서 개인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면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2021년 설립된 인핸스는 온톨로지와 컴퓨터 사용 에이전트(CUA)를 핵심 기술로 보유한 AI OS 솔루션 기업이다. 온톨로지 레이어는 AI 에이전트가 산업별 맥락과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도록 하고, CUA는 실제 컴퓨팅 환경에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하는 실행 엔진이다.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5월 팔란티어(Palantir)의 스타트업 펠로십에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인핸스에 따르면 자사 웹 AI 에이전트 모델 ACT-1이 글로벌 벤치마크 Mind2Web에서 DOM 제어 성능과 버티컬 커머스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이세돌을 중심에 세운 이날 행사의 선택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선 무게를 지닌다. 2016년 알파고는 단순히 바둑 한 판을 이긴 것이 아니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암묵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공식 대국에서 알파고를 유일하게 꺾었던 이세돌이, 이번엔 대립자가 아닌 협력자로 같은 자리에 섰다. 한 시대를 닫고 다른 시대를 여는 시도였다.

한편 이세돌 9단은 2019년 프로 기사 은퇴 이후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AI와 바둑을 융합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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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핸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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