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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기는 방법까지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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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문제는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9일 도쿄돔. 2026 WBC C조 최종전을 앞둔 한국 대표팀 벤치에는 승리 의지만이 아니라 방정식이 놓여 있었다. 5점차 이상 승리, 2실점 이하.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만 2라운드 진출이 가능했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쫓기지 않는 마음"을 강조했다. 조건을 알면서도 쫓기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야구에서 선수들은 보통 단순한 목표를 갖고 경기에 들어선다. 이긴다.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이날 한국 선수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도,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점수판을 의식해야 했다. 이기는 것과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득점보다 실점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였다"고 했다. 벤치 전체가 방정식을 들고 경기를 운영했다는 의미였다.

반면 호주의 미션은 달랐다. 이길 필요도 없었다. 이기거나, 혹은 4점차 이내로만 지면 됐다. 한국이 아무리 크게 이겨도 호주가 3점을 내는 순간 한국의 모든 경우의 수는 사라지는 구조였다. 미국 ESPN은 이 경기를 "complicated tiebreaking system", 복잡한 동률 규정에 의한 진출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그라운드에서 두 팀은 본질적으로 다른 경기를 하고 있었다.

이 비대칭적 구도는 WBC 동률 규정에서 비롯됐다. 한국이 호주를 꺾을 경우 한국·호주·대만이 모두 2승 2패로 묶이는데, 세 팀이 서로 1승 1패씩 주고받은 구조여서 승자승으로도 순위를 가릴 수 없었다. 다음 기준은 동률 팀 간 경기에서의 실점을 수비 아웃카운트로 나눈 최소 실점률이었다. 호주는 앞선 대만전에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한국이 그 격차를 뒤집으려면 정확한 범위 안에 들어와야 했다.

경기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선발 손주영이 1회를 던진 뒤 불펜에서 부상 사인이 왔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류지현 감독은 심판에게 상황을 알리고 1분의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 동안 노경은이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했다. 41세 베테랑은 갑작스러운 등판에도 2이닝을 막아냈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노경은을 "존경스럽다"고 했다.

스코어보드는 매 이닝 조건의 현재값이었다. 5회 호주에 솔로 홈런을 맞아 5-1이 됐을 때 진출 조건이 흔들렸다. 6회 김도영의 적시타로 6-1을 만들었을 때 다시 충족됐다. 그리고 9회 초, 안현민의 희생플라이로 박해민이 홈을 밟으며 7-2. 조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9회 말, 호주의 마지막 반격이 시작됐다. 조병현이 볼넷을 내주며 주자를 내보냈고, 다음 타자 윈그로브의 타구가 우중간으로 향했다. 그 순간 이정후가 다이빙했다. 공을 잡았다. ESPN은 이 장면을 별도로 주목했다. 그 타구가 그대로 빠졌다면 주자가 득점해 점수차가 4점으로 줄었을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호주가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이정후의 글러브 안에 한국의 2라운드가 들어 있었다. 조병현이 마지막 타자를 처리하며 경기가 끝났다.

한국은 2승 2패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호주, 대만과 승패는 같았지만 최소 실점률에서 앞섰다. 2009년 이후 17년 만의 2라운드 진출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자 최고의 경기"라고 했다. 방정식을 풀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정식을 안고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그게 이날의 진짜 승리였다.


글 : 최원희(choi@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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