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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비상사태 선포→중간선거 연기할 수도” 최악의 시나리오…미국 민주주의 시험대 [권윤희의 월드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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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 3줄 요약]
●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트럼프가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11월 중간선거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트럼프는 후보 시절인 2023년 “임기 첫날만 독재자가 되겠다”라며 민주주의 규범을 가볍게 다루는 수사를 반복한 바 있다.
● 군 병력이 미국 여러 도시에 배치되거나 배치가 추진되는 등 트럼프의 대통령 권한 확대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포와 순응의 일상화는 견제장치 약화와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열린 이란전쟁 전사자 유해 귀환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2026.3.7 델라웨어 AP 연합뉴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11월 중간선거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르헨티나 일간 라나시온은 8일(현지시간) 단턴과의 인터뷰를 전하며, 그가 트럼프 2기 미국 사회를 “권위주의적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체제”로 진단했다고 보도했다.

단턴은 특히 “트럼프가 때로는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다”며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11월 중간선거를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선거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또한 “이미 군 병력이 국내 여러 도시의 거리까지 배치된 상황”이라며 “이런 조치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턴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정파적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18세기 프랑스와 프랑스혁명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오래 재직했고, 2011년 미국 국가인문학메달을 받은 대표적 지성사 연구자다.

검열과 여론, 출판과 권력의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학자가 오늘의 미국에서 “공포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중간선거, 트럼프의 정치적 생존과 직결된 ‘승부처’

그가 이렇게까지 경고 수위를 높인 배경에는 트럼프 2기 들어 두드러진 권한 집중이 있다.

로이터는 지난 1월 트럼프가 복귀 1년 만에 행정부 권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전통적 견제장치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인 채 국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같은 달 공화당 의원들에게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자신이 다시 탄핵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달 8일에는 더 엄격한 유권자 등록 규제를 담은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다른 입법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중간선거를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직결된 승부처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단턴이 언급한 “군 병력이 거리까지 배치된 상황”도 완전히 근거 없는 표현은 아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시카고, 포틀랜드 등 여러 도시에서 주방위군이나 연방 인력 투입을 추진하거나 실제 집행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법원이 위법성 여부를 두고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이 치안과 시위, 이민 단속을 명분으로 군사적 상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 자체가 미국 민주주의에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이어진 이유다.

다만 단턴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곧바로 현실적 계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다.

시나리오 현실화? ‘권위주의적 충동’에 대한 경고성

미국 헌법 제1조 제4절 1항(Elections Clause)에 따르면 연방의회 선거의 시기·장소·방식은 기본적으로 각 주가 정하되, 의회가 법률로 이를 바꾸거나 조정할 수 있다. 즉 대통령이 단독으로 중간선거 일정을 연기하거나 중단할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단턴의 발언은 법적 가능성의 설명이라기보다, 트럼프가 비상권한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려 들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충동’에 대한 경고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하다.

앞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인 2023년 ‘재집권 시 독재자로 변모할 가능성’에 관한 우려에 대해 “임기 첫날만 독재자가 되겠다”고 답해 거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며칠 뒤에는 “하루만 독재자가 되고 싶다”고 같은 취지의 표현을 다시 꺼냈다.

단턴이 라나시온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때로는 공개적으로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짚은 것도 이런 수사가 누적돼온 맥락과 맞닿아 있다. 실제 계획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의 언어가 민주주의 규범의 하한선을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그의 우려는 정치적 현실과 접점을 가진다.

공포와 순응의 일상화, 민주주의 후퇴로 연결 우려

단턴이 더 깊이 우려한 것은 선거 제도 자체보다 그 이전 단계의 변화다.

그는 라나시온 인터뷰에서 미국 사회가 언론 불신과 허위정보 확산, 자기검열의 확산 속에서 서서히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많은 시민이 신문이나 방송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에 접근하면서 부정확하거나 거짓된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대형 로펌과 대학, 언론기관들까지 정부 압박 속에 몸을 낮추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어느 날 갑자기 선거 폐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순응의 일상화 속에서 진행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턴의 발언을 종합하면 지금 미국의 문제는 트럼프가 정말 선거를 중단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 확대와 선거 규칙 압박, 언론과 지식사회의 위축, 허위정보의 범람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견제장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다.

미국 헌정 체계상 대통령의 단독 선거 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발상이 공적 담론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미국 민주주의가 이전과 다른 시험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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