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도럴의 트럼프 내셔널 도럴 골프클럽에서 열린 실드 오브 디 아메리카스 정상회의(Shield of the Americas Summit)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회의에는 미주 지역 12개국 정상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사진=AFP) |
해협 막히자 유가 폭등…세계 원유 수송 병목 심화
글로벌 기준유인 브렌트유는 6일(현지시간) 배럴당 92.69달러로 마감해 한 주 동안 28% 상승했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6% 오른 배럴당 90.90달러를 기록했다. WTI의 주간 상승률은 1983년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해상 운송이 크게 위축된 것이 유가 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석유제품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에너지 수송로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제한이 지속될 경우 유가가 다음 주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2008년과 2022년에 기록했던 고점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운항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200억달러 규모의 재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통해 전쟁 위험을 포함한 보험을 지원해 선박 운항 재개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유조선 안전 확보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조치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페르시아만 일대에는 수백 척의 유조선이 발이 묶여 있다. 일부 분석에서는 이들 선박을 모두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 규모가 약 352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미국 투자회사 울프리서치의 토빈 마커스 정책 책임자는 FT에 “200억달러 규모의 재보험 프로그램이 보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선박과 승무원의 안전 문제, 기업 평판 리스크 등도 여전히 변수”라고 말했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는 평소보다 급격히 줄었다. 평상시 하루 100척 안팎이 이 해협을 통과했지만 최근에는 하루 약 8척 수준으로 감소해 통행량이 약 9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데이터업체 클레퍼에 따르면 현재 페르시아만 주변 해역에는 400척이 넘는 유조선이 대기 중이다. 일부는 이란 또는 이란 관련 선박이며, 원유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와 컨테이너선도 안전한 통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해상에 묶여 있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완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원유를 실은 유조선 상당수가 제재로 판매처를 찾지 못한 채 바다에 머물고 있어 제재 완화를 통해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 확대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며, 한때 원유 선물시장에 개입하는 방안까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조치들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런 대응책이 단기적인 심리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유가 상승 압력을 근본적으로 완화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석유협회(API)의 마이크 서머스 최고경영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결국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다른 정책들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 추이 (그래픽=마켓워치) |
수송 막히자 생산도 흔들…중동 산유국 감산 조짐
이처럼 수송 병목이 심화하면서 원유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페르시아만 지역의 저장시설이 빠르게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수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생산 중단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JP모건은 특히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이르면 다음 주부터 하루 400만배럴 이상의 원유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글로벌 원유 공급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규모다.
이미 감산을 시작한 국가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 쿠웨이트석유공사(KPC)는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원유 생산과 정제 가동을 예방적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감산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라크 유전은 이미 생산을 줄였다. 카타르는 대규모 가스 수출 물량에 대해 불가항력(포스마주르)을 선언했다. 불가항력 조항은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통제불능 이변이 터지면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해도 책임을 면제하거나 이행을 미뤄주는 장치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공화당 출신 정치전략가 브리트니 마르티네스는 CNBC에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거나 시장 변동성이 지속되면 공화당이 생활비 문제를 강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결국 유권자들이 가계 예산에서 체감할 정도로 전쟁이 장기화되느냐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