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연설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안보 강화를 명분으로 자국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만에 프랑스 핵전력이 다시 증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프랑스 일롱그섬 해군기지에서 “우리 억지력이 현재와 미래에도 확실한 파괴력을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게 내 책임”이라며 “핵탄두 숫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불필요한 추측을 피하기 위해 과거와 달리 구체적인 핵무기 보유 규모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핵전력 확대 배경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군사력 증강,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 변화 등을 직접 거론했다. 계획대로라면 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처음으로 핵무기 감축 기조를 되돌리게 된다. 프랑스는 냉전 말기 약 540기의 핵탄두를 보유했으나 이후 자발적으로 감축해 현재는 약 290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EU 내 유일한 핵보유국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새로운 핵교리에 영국과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스웨덴, 덴마크가 동참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번 결정이 ‘유럽 자체 핵우산’ 구상의 일부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핵무기를 탑재한 프랑스 공군기의 동맹국 임시 배치도 허용하겠다며 관련 협정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하고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일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 안보에서 역할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프랑스 핵전력을 유럽 차원의 억지력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제시해왔다.
독일과의 협력도 본격화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이 핵심 파트너”라며 전략시설 상호 방문과 합동훈련 등 협력의 첫 단계가 올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공동 성명에서 고위급 핵운영 그룹을 출범시켰다고 밝히며, 핵확산금지 체제와 국제법 의무를 준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1990년 동서독 통일 당시 체결한 ‘2+4 협정’에 따라 핵무기 개발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번 선언을 두고 유럽 각국에서는 지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덴마크와 폴란드 등은 유럽 억지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반면, 군비 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과 러시아 간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최근 종료된 상황에서 핵무기 증강 선언이 국제 안보 환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 프랑스 사무소장 장마리 콜랭은 “핵보유국이 핵군축을 추진하도록 한 국제적 합의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러시아가 중대한 도발로 받아들일 경우 긴장이 급격히 고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