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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후계자’의 37년…하메네이 시대 저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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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37년 철권 통치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망. 그래픽=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이란을 36년간 이끌어온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가 사망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하메네이가 분쟁 속에서 사망했다"고 선언했고,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도 미·이스라엘 공습 이후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란정부 역시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하메네이의 사망은 단순한 지도자 교체를 넘어 40년 가까이 유지돼 온 이란 신정체제의 중심축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의 출발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성지 도시 마슈하드에서 아제르계 성직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종종 검소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저녁 식사로 "빵과 건포도"를 먹곤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금욕적 이미지는 훗날 그의 정치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다섯 살 때 종교 교육을 시작했고, 마슈하드 신학교에서 성장기를 보낸 뒤 나자프와 곰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지녔던 최고 종교적 권위를 정식으로 획득하지는 못했다. 1989년 최고지도자로 지명되면서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아야톨라 칭호를 부여받았고, 이는 그의 통치 초반 종교적 정통성 논란의 배경이 됐다.

20대 초반 곰에서 수학하던 그는 당시 급진적 종교 사상가였던 호메이니의 영향에 깊이 빠져들었다. 1964년 국왕(샤)이 호메이니를 추방하자 하메네이는 이란에 남아 스승의 이슬람 정부론을 전파했다. 그는 샤의 비밀경찰 사박(Savak)에 의해 여섯 차례 체포됐고, 독방 수감과 고문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사박이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훈련을 받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만큼, 그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는 이 시기에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혁명, 그리고 권력의 집중

1979년 혁명으로 2500년간 이어진 왕정이 무너지면서 그의 정치적 위상도 급변했다.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가 귀국한 뒤 하메네이는 혁명 엘리트로 부상했고, 이후 신생 이슬람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1989년, 이란-이라크 전쟁 종전 직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후계 구도는 불투명했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하셰미 라프산자니는 하메네이의 승계를 도왔다. 비교적 젊은 성직자였던 그를 통제 가능한 인물로 봤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은 경제 개방과 권력 집중을 둘러싸고 긴장 관계를 이어갔고, 이 경쟁 구도는 거의 30년간 지속됐다. 2017년 라프산자니가 사망하면서 하메네이는 잠재적 경쟁자를 완전히 역사 속으로 보내며 권력 집중 체제를 완성했다.

그는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 민병대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안보 체계를 구축했다. 선출직 대통령과 의회가 존재했지만 핵·미사일·대미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최고지도자에게 있었다. 성직자 통치 체제와 제한적 민주주의가 결합된 복합 권력 구조는 사실상 그의 승인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 통치 철학은 '저항'

하메네이의 통치 철학은 단 하나였다. '저항'. 그는 미국과 서방을 체제의 근본적 위협으로 규정했고, 대외 정책의 중심을 반미 노선에 두었다. 레바논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등 역내 대리 세력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라크 전쟁과 아랍의 봄 이후 권력 공백을 활용해 중동 내 입지를 넓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고립이었다. 이란은 글로벌 금융망에서 사실상 배제됐고, 통화 가치는 급락했다. 고물가와 실업, 두뇌 유출이 구조화됐다. 중동 일부 국가들이 금융·물류·기술 허브로 도약하는 동안, 이란은 제재와 군사 개입에 국력을 소진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통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고물가와 경제난으로 전국적 시위가 확산됐고, 올해 초에는 혁명 이후 가장 강력한 탄압이 이뤄졌다.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치는 시위대에 보안군이 발포하며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외부 환경도 악화됐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가자 전쟁이 촉발됐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대리 세력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약화됐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도 붕괴됐다. 미국은 이란에 탄도미사일 포기를 요구했지만, 하메네이는 이를 "최후의 억지력"이라며 거부했다. 이러한 강경 노선이 이번 공습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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