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2024년 2월 16일, 알렉세이 나발니(1976-2024)는 북극권의 한 수용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심장 부정맥'이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크렘린궁 안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그의 아내 율리아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남편이 아플 때 의무실이 아니라 독방으로 보내졌다고. 푸틴이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위안이 될까? 나발니의 죽음은 푸틴 정권이 만든 거대한 업악 체제의 필연적 결과였다. 2020년 노비촉 신경작용제 독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그를, 이번엔 영하 50도의 북극권 수용소가 천천히 죽인 것이다.
주주총회에서 시작된 저항, '사기꾼과 도둑들의 당'
나발니는 1976년 6월 4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변호사였다. 소련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한 그는 무력보다는 '정보'와 '풍자'로 싸우는 법을 깨우쳤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권력에 맞섰다. 국영기업 주식을 조금 사서 주주총회에 참석한 뒤, 경영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무제표에서 이 30억 루블은 어디로 갔습니까?" 상대는 말문이 막혔고, 그의 질문은 블로그를 통해 수백만 명에게 퍼졌다. 이 '공개적 비판'에 푸틴의 측근들은 당황했다.
2011년, 그는 푸틴의 여당 '통합 러시아'를 '사기꾼과 도둑들의 당'이라고 불렀다. 단어 하나로 체제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 절묘한 '이름 붙이기'는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나발니의 가장 큰 무기는 유튜브였다. 2011년 설립한 반부패재단(FBK)을 통해 그는 고위 관리들의 호화저택, 요트, 비자금을 파헤쳤다. 가장 유명한 영상은 2021년 1월 공개된 '푸틴의 궁전' 폭로였다. 흑해 연안의 13억 5천만 달러(약 1조 8천억 원)짜리 궁전에는 지하 얼음판 경기장, 사설 카지노, 원형극장까지 있었다. 이 영상은 1억 22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를 '정치적 연예인'이자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속옷에 묻은 노비촉, 그리고 웃으며 돌아온 남자
2020년 8월 20일, 나발니는 시베리아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 쓰러졌다. 독살이었다. 구소련이 개발한 군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2018년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 스파이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던 바로 그 독극물이다.
독일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언론과 협력해 암살시도의 전모를 밝혀냈다.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나발니는 직접 암살범에게 전화를 걸어 화학무기 전문가인 척 추궁했다. 상대는 속아 넘어가 독을 '속옷의 고무줄 부분'에 발랐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은 이를 '언더웨어게이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그 다음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안락하게 망명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21년 1월, 그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체포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나라에서 싸우지 않으면 누가 싸우겠는가?" 공항에서 즉시 체포된 그는 2022년 9년 형을, 2023년에는 19년이 추가되어 총 2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교도소를 전전하면서도 화상 재판 때마다 깡마른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판사들을 조롱했다. 마지막 법정 출두에서 판사에게 말했다. "판사님의 엄청난 월급을 제게 좀 나눠주세요. 저는 돈이 떨어졌거든요." 그는 감옥에서도 소셜미디어로 푸틴을 비판했고, 2024년 2월 1일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지 2주 후 죽었다.
조롱이라는 무기, 권력의 위엄을 벗기다
독재자를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나발니는 조롱을 택했다. 푸틴의 궁전을 폭로하면서 진지하게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비꼬았다. "원형극장이요? 카지노요? 누가 이런 취향을 가졌을까요?" 조롱은 권력의 위엄을 벗긴다. 한국에도 탈춤, 풍자, 해학의 전통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잊는다. 때로는 웃음이 분노보다 강하다. 나발니는 죽는 순간까지 농담을 했다.
나발니의 가장 큰 업적은 러시아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한 것이다. 권력은 공포를 먹고 자란다. 입을 막고, 펜을 꺾고, 압수수색으로 겁을 주는 행위는 결국 시민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나발니의 '해학'은 그 공포를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나발니의 이야기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언어의 힘이다. '사기꾼과 도둑들의 당'이라는 한 문장이 체제 전체를 정의했다. 한국에서도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둘째, 투명성이다. 나발니의 영상들은 시민들에게 증거를 제시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도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재무제표와 계약서를 요구해야 한다.
셋째, 연대다. 나발니는 혼자 싸우지 않았다. 반부패재단, 지역사무소, 수백만의 지지자들이 있었다. 고립된 개인은 쉽게 무너지지만, 연결된 네트워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푸틴은 나발니를 처단할 때 직접 총을 쏘지 않았다. 횡령, 사기, 극단주의 선동 등 온갖 법 조항을 들이대며 그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법이 정의를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는 세련된 흉기로 변질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지금 한국의 사법부를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발니가 폭로한 것은 단순한 뇌물이 아니라, 국가예산이 권력자의 사적인 취향을 위해 쓰이는 '체계적 약탈'이었다. 한국사회에서도 공적인 권력이 사적인 인연이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공정과 상식'이라는 구호 뒤에 숨은 실체를 나발니처럼 끈질기게 파헤치는 이들이 절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독재는 언제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푸틴은 나발니를 죽여 위협을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죽음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깨웠다. 2024년 3월 1일 장례식 날, 수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모스크바 거리로 나왔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는 남편의 사망 직후 말했다. "알렉세이를 죽임으로써 푸틴은 내 절반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게 말합니다.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한국은 러시아가 아니다. 우리는 북극권 수용소도, 노비촉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는 언제나 취약해질 수 있다. 윤석열의 12.3 계엄 사태가 보여주듯, 사법부가 극우집단의 도구가 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는 나발니처럼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의 용기를 기억하고 질문해야 한다. "저 30억은 어디로 갔습니까?" "누가 결정했고, 누가 이익을 봤습니까?"
나발니는 2015년 크렘린 인근 다리에서 암살당한 푸틴의 또 다른 비판자 보리스 넴초프의 추모행진을 이끌었다. 나발니는 그의 뒤를 이었고, 9년 후 같은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율리아가 싸움을 이어가고 있고,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나발니는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썼다. 그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몸소 증명했다. 만약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나발니처럼 될 것인가, 아니면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나발니가 남긴 "포기하지 마라"는 유언은 전 세계 민주주의자들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우리도 우리 안의 '작은 푸틴'들에게 당당히 맞설 '해학의 나발니'를 한 명씩 품어야 할 때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생전의 나발니(오른쪽) 와 부인의 모습. ⓒ 필자 제공 |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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