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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구조조정 첫발…110만톤 멈췄지만 체질개선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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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HD현대 통합…대산 110만t NCC 가동 중단
2.1조 금융·세제 총동원해 구조조정 지원
전문가 "화평법 장벽 그대로면 고부가 전환 발목"


비즈워치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첫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충남 대산을 축으로 롯데케미칼과 HD현대그룹 계열사가 설비를 통합, 연산 11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멈추기로 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감산 로드맵'이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정부는 2조1000억원 규모의 금융·세제 지원 패키지까지 묶어 전면 지원에 나섰다. 다만 업계 안팎의 반응은 신중하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설비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구조적 수익성 악화를 뒤집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전문가들은 "연쇄 재편을 끌어낼 추가 유인책과 규제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요금·원료비 부담 완화는 물론, 고부가 전환을 가로막는 제도 장벽을 손보지 않으면 기업이 스페셜티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감산이 고부가 체질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규제 및 원가 구조 등 근본 변수가 그대로 남는다면 이번 재편은 '상징적 결단'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감산만으론 부족" 신중론 여전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산업경제장관회의에서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이 제출한 사업재편 계획을 최종 승인, 관계부처 합동 지원 방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8월 정부가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 이후 첫 승인 사례다.

핵심은 충남 대산을 중심으로 한 통합 재편이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사업장을 물적 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신설 통합법인을 설립한다. 기존 6대4였던 지분 구조는 향후 5대5로 재편된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통합법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각각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증자한다.

가장 상징적인 조치는 설비 감축이다. 연산 110만톤 규모의 롯데케미칼 대산 나프타분해설비(NCC)는 가동을 중단한다. HD현대케미칼의 85만톤 설비만 가동을 이어간다. 이에 대산 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얼마나 줄였느냐보다 어떤 설비를 줄였느냐가 중요하다"며 경쟁력이 낮은 설비를 선별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양사는 중복된 다운스트림 설비도 축소한다. 만성 적자를 낳아온 범용 제품 중심 구조를 정리하고 운영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설비 통합과 생산 효율 향상에는 2450억원이 투입된다.

통합법인은 감산을 넘어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고탄성 경량 소재와 이차전지 핵심 소재, 전해액용 유기용매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한다. 에탄 원료와 바이오 나프타 활용을 통해 탄소배출을 최대 50% 낮추는 친환경 전환도 병행한다. 고부가 전환과 AI 공정 혁신 분야에는 26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오는 2028년 흑자 전환이 1차 목표다.

업계에선 이번 110만톤 NCC 가동 중단을 두고 "정부가 제시했던 감축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실행에 들어갔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 과잉이 심화된 상황에서 국내 범용 생산을 줄이겠다는 방향이 처음으로 구체화됐다"며 "감축이 시작됐다는 점 자체가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감축만으로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납사·에틸렌 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급 과잉은 여전하다"며 "결국 중국 저가 물량을 극복하려면 고부가 전환이 불가피하지만 해당 제품의 수요와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향성은 맞지만 구체적인 품목과 시장 전략이 더 제시돼야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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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기준 국내 NCC 설비 연간 생산량./그래픽=비즈워치


"규제 개혁 없인 구조개편도 반쪽"

정부는 이에 맞춰 총 2조1000억원 규모의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 가운데 금융 지원이 최대 2조원에 달한다. 신규 자금으로 최대 1조원을 공급하고 기존 대출도 최대 1조원까지 영구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사업재편이 마무리되는 2028년까지 약 7조9000억원 규모의 협약 채무에 대해선 상환을 유예, 기존 금융 조건을 유지키로 했다.

세제 지원도 병행된다.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를 75~100% 감면하고 과세 이연 확대 등을 통해 법인세 부담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업결합 심사 기간은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한다. 인허가 승계 절차도 간소화한다.

원가 절감 지원도 포함됐다. 대산을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해 전기요금을 4~5% 가량 낮추고, 액화천영가스(LNG) 직도입 범위 확대와 납사·원유 무관세 적용 연장을 지원한다. 3년간 690억~1150억원 수준의 원가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구조개편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방향은 맞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산 1호에 그칠 게 아니라 울산과 여천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더 강한 유인책을 내놔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 수준의 대책으로는 연쇄 재편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기요금 대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분산에너지 특구를 통해 전기요금을 최대 5% 인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이 교수는 "영양가가 없는 대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최근 3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이 70%가량 오른 상황에서 5% 인하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이 정도로는 원가 경쟁력을 논하기 어렵다"고 했다.

'숨은 리스크'로 지목되는 건 화평법*화관법**이다. 이 교수는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인 리치(REACH)법을 벤치마킹했다고 하지만 정작 핵심은 빼고 껍데기만 가져왔다"고 짚었다. 그는 "리치법 1조에는 환경 보호와 국민 안전뿐 아니라 '화학산업 진흥과 유통망 확충'이 법의 목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반면 한국 화평법 1조에는 '산업 육성'이라는 관점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축 가운데 하나를 통째로 삭제한 셈"이라고 부연했다.

화평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 화학물질관리법

위 두 법은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환경 피해를 예방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됐으나, 업계에선 설비 통합·변경 과정에서의 과도한 인허가 절차가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스페셜티 전환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했다. 석화 산업이 범용에서 스페셜티로 넘어가려면 새로운 화학물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데, 개발 초기 단계부터 상당한 비용을 들여 정부에 물질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구조라면 기업이 쉽게 도전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신제품 개발을 사실상 위축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이대로라면 '새로운 공장을 짓지 말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부가 전환을 주문하면서 도리어 제도가 그 발목을 잡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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