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 닐 고서치 대법관. 게티이미지 |
고서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처음 발탁한 대법관이었다. 당연히 상원 인사청문회 단계부터 야당인 민주당의 견제가 치열했다. 스칼리아 사후 후임자 충원이 늦어지며 대법원은 1년 넘게 ‘8인 체제’로 운영됐다. 보수가 4명, 진보가 4명으로 팽팽히 대립했다. 민주당은 고서치의 합류로 대법원 보수파의 입지가 강화되며 진보 진영에 불리한 판결이 잇따를 것을 우려했다. 후보자 시절 고서치는 노골적인 보수 색채를 드러내진 않았다. 되레 “나는 사실과 법에 따라 판결한다”며 “법이 요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미심쩍었는지 민주당 의원 거의 대부분이 등을 돌리며 고서치의 인준안은 찬성 54표 대 반대 45표로 아슬아슬하게 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1973년 대법원이 내린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결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판례로 통했다. 이는 여성의 낙태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대법관 5 대 4 의견으로 이 판례를 폐기함으로써 거의 반세기 만에 낙태를 법률로 규제 또는 금지할 길을 열었을 때 미국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보수 진영은 환호한 반면 진보 진영은 낙담했다. 그들의 분노는 대법원의 보수 대법관들에게 향했다. 다수의견에 가담한 고서치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어느 민주당 상원의원은 고서치가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유지할 것처럼 발언한 점을 거론하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7년 4월 닐 고서치 신임 연방대법관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서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처음 임명한 대법관이다. 방송 화면 캡처 |
20일 대법원이 대법관 6 대 3 의견으로 트럼프의 상호 관세 정책에 위법 판결을 내린 뒤 후폭풍이 거세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대법관 중 고서치 등 2명이 “세금 부과는 대통령 아닌 의회의 권한이고 관세도 세금의 일종”이란 다수의견 쪽에 섰다. 판결문에 첨부한 보충의견에서 고서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은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혀 의회에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트럼프와 백악관의 독주를 경계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의원들은 물론 뉴욕타임스(NYT) 같은 언론도 고서치의 이 보충의견에 찬사를 보냈다. 가히 ‘고서치의 재발견’이라고 불릴 만하다. 2017년 청문회 당시 “법이 요구한다면 트럼프에게 불리한 판결도 내릴 것”이라던 다짐이 9년 만에 실행에 옮겨졌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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