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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T칼럼] 질문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 AI로 쓰고, AI로 읽고, AI로 심사하는 시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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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된 생산성과 불안감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AI)은 알파고나 보여주는 이벤트, 혹은 특정 IT 기업 개발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제는 사무실 어디를 가도 모니터 한구석엔 Gemini나 클로드(Claude)가 켜져 있다. 어느 누가 강요한 적은 없지만, 시장과 환경의 경쟁상황이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보니, 상황이 AI를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남들은 기관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데 혼자서 장인의 정신이랍시고 칼을 갈고 있을 순 없다. 안 쓰면 도태된다.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냉정한 현실이다.

특허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변리사와 같은 전문직역의 사람들은 고도의 지식 노동자여서 대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글을 쓰고, 논리를 세우는 건 인간만의 성역이라 생각했지만 최근의 흐름을 볼 때 이는 대단한 착각에 불과했다. 이제 AI가 발명 내용을 바탕으로 초안을 쓰고, AI가 수백 장의 선행문헌을 읽어 요약하고, AI가 침해 가능성을 분석한다. 결과물도 꽤 그럴듯 하다. 바야흐로 대 AI 루프(Loop)의 시대다.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특허조사나 특허분석 과정에서는 기존에도 머신러닝 초기 모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ChatGPT나 Gemini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AI 기반으로 특허명세서 초안을 작성해주는 깜짝 놀랄만한 성능을 보이는 WiseDrafter나 PatenSpace 같은 여러가지 AI 기반의 B2B 솔루션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편해진 만큼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계가 쓰고, 읽고, 분석까지 다 한다면 사람인 변리사들은 뭘 해야 하나? 단순히 기계가 뱉어낸 결과물을 포장해서 납품하는 중간 유통업자로 전락할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발명자와 변리사, 그리고 심사관이 지켜야 할 그리고 AI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발명에 대한 발명자의 책임감

최근 상담을 하다 보면 황당함을 넘어 섬뜩할 때가 있다. 고객들이 가져오는 발명신고서나 명세서 초안이 일견 깔끔하고 그럴듯 해 보인다. 문장은 유려하고, 단락 구분은 깔끔하며, 청구항 형식까지 그럴싸하게 갖췄다. 열에 여덟은 생성형 AI로 뽑아온 것들이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세부적인 구성요소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오거나 얼버무리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AI의 태생적 한계 때문인데, AI는 인터넷상의 수많은 텍스트를 학습해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한' 문장을 만드는 기계다. 즉, 평균적으로 그럴 듯해보일만한 답변을 내놓는 데 선수다. 하지만 특허는 평균이 아니라 차별성을 증명해야 한다. 남들이 안 하는 생각, 기존에 없던 해결책을 담아야 하는데, AI는 그럴싸한 일반론으로 문서를 채워버린다. 아니면 너무 과도한 세부적인 구성요소나 내용을 채워서 발명자도 설명하기 어려운 난해한 논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발명자, 연출가(Director)가 되어야

글은 AI가 훨씬 빠르고 잘 쓸 수 있기 때문에, 발명자는 변리사에게 아이디어를 말로 잘 설명하고 핵심을 전달하는데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굳이 발명신고서 같은 문서를 변리사에게 상담시에 제공하고자 한다면, 발명자는 마치 영화감독이 배우에게 연기를 지시하듯, AI에게 명확한 디렉팅을 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 명세서 써줘 라고 프롬프트 한 줄 던지는 건 디렉터로서 적절하지 못하다.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A인데, 기존 기술 B는 비용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어. 그래서 나는 C라는 소재를 써서 해결할 거야. 이 기술적 특징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발명설명서를 작성해."와 같이 구체적으로 지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과물이 나오면 반드시(!) 의도에 맞는지, 내 생각이 잘 반영되었는지 검수해야 한다. 내 의도대로 기술적 특징이 들어갔는지, AI가 멋대로 지어낸 거짓 정보는 없는지, 엉뚱한 실시예를 넣지는 않았는지 따져야 한다. 텍스트 생산이라는 고된 노동에서 해방됐으니, 남는 에너지는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 이게 최선의 해결책인가를 고민하는 데 써야 한다. 그 치열한 고민 없이는 AI가 써준 글은 평범한 선행발명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변리사, 권리 설계자로서의 리드를 놓치지 말아야

변리사들도 AI를 사용하여 업무를 효율화하고 있다. AI를 활용하여, 외국 문헌 번역하고, 복잡한 선행기술 요약하고, 명세서 배경 기술을 작성하기도 한다. 빠르고 편하다. 그런데 여기에 위험한 함정이 있다. 발명자가 AI로 작성하여 발명자료 작성의 주도권을 놓친 채 완성된 문서를 변리사가 받아서 이를 다시 AI로 요약하거나 검증한다면 마치 AI끼리 작성하고 분석하면서 서로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찾아보니 이걸 전문 용어로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라고 한단다. 생각하기 귀찮아서 뇌의 할 일을 기계에 외주를 주는 것인데, 전체 문서의 텍스트를 안 보고 AI 요약본만 훑어보게 된다면 기술의 미묘한 뉘앙스, 숨겨진 회피 설계 포인트, 권리 범위의 구멍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일이 빨리 끝나서 좋겠지만, 나중에 분쟁이 발생하거나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

변리사의 역할은 이제 발명자의 아이디어를 특허명세서라는 글로 잘 표현해주는 정도의 대필 작가가 아니라 전체 특허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설계하고 관리감독하는 권리 설계자 로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AI는 기술적 팩트는 나열할 수 있어도, 법적인 유불리는 판단은 하기 어렵다. 물론 이 평가도 얼마 안 있다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2026년 현재 시점에서는 "이 단어를 명세서에 쓰면 권리 범위가 좁게 해석될 위험이 있으니 상위 개념으로 바꾸자"라든지, "이 구성요소는 경쟁사가 쉽게 빼고 만들 수 있으니 필수 구성에서 빼야 한다"라든지, "이 실시예는 나중에 분할 출원을 염두에 두고 미리 적어두자"라던지 하는 이러한 전략적 판단은 실무역량이 누적된 경험 있는 변리사가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술 설명서를 강력한 법적 권리 문서로 탈바꿈시키는 설계 역량이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은, AI가 쓴 글은 문법적으로 또는 겉보기엔 오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의 글은 투박해서 오히려 헛점이 잘 보이는데, AI 글은 매끄러워서 오류를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더 면밀히 검토하여 AI가 만든 논리에 비약은 없는지, 최신 기술내용이나 구성과 배치되는 내용은 없는지 의심해야 한다.

그 동안에는 발명자와 상담하면서, 발명자의 논리나 의견이 정말 타당한 구성인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은 그닥 필요치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설명을 듣는 내용이 진보성이 인정될만한 차별화된 구성인지 정도만 판단하면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지금 이 발명신고서 내용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 부분이 AI 시대 변리사의 필요한 역량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허심사, AI vs AI

지식재산처도 이미 AI 검색 시스템을 어느 정도 도입한 상황이고, 심사관들 업무 보조에 적극 활용 중에 있다. 조만간 AI가 쓴 명세서를 특허청 AI가 심사하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특허법 제29조 제2항의 특허출원 전에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기존 발명에 의해 쉽게 발명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항상 쟁점이 되고 있다. 태생적으로 객관화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인데, 나중에는 선행문헌의 조합에 대한 확률이나, 선행문헌의 조합으로 인한 본 발명의 구성 유사도가 수치적으로 제시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특허는 아무리 유사도가 높더라도 예를 들어 구성요소의 98%가 비슷해도, 나머지 2%의 차이가 산업을 뒤집을 혁신일 수도 있다. 반대로 서술된 내용의 유사도는 50%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본질적인 기술 사상이 같으면 쉽게 발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AI가 과연 이러한 미묘한 맥락까지 잡아낼 수 있을까.

경험에 기반한 변리사의 설득력이라면

심사관이 AI로 바뀌지 않는 이상은 결국 최종적인 특허권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심사관이 하게 되기 때문에, 변리사는 기계적인 수치를 넘어서 발명의 차별성에 대해 심사관에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AI로 볼 때는 유사도 수치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작은 기술적 차이가 현장에서 큰 효과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구성일 수 있다면, 이를 심사관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몫은 변리사에게 있다. 이 과정에서는 AI가 뽑아준 데이터만 맹신할 것이 아니라 직관과 통찰을 기반으로 기술의 흐름과 산업적 가치를 읽어야 변리사와 심사관이 제대로 된 특허를 합작해낼 수 있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설득하고 논리를 구성하는 변리사의 말이나 글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답은 기계가, 질문은 사람이

AI로 쓰고, AI로 읽고, AI로 분석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예전처럼 자판 두드리는 속도가 빠르다고 일 잘하는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그 편리함에 취해 생각하는 힘, 질문하는 힘을 잃어버리면 AI의 시대에 적응하기는 요원할 것이다.

답은 AI가 잘 낸다. 우리가 며칠 걸릴 답을 몇 초 만에 준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수준 낮은 같은 질문을 넣으면 수준 낮은 답이 나오는 건 AI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질문을 던져야 좋은 답이 나온다.

발명자는 이 기술이 왜 필요한가? 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며, 변리사는 이제 특허명세서를 어떻게 쓰고 청구항 설계를 어떻게 해야 경쟁사가 꼼짝 못 할 권리가 될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상황이다. AI는 시키는 대로 할 뿐, 스스로 왜 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성역이다.

고객이 가져온 AI 기반의 명세서나 AI가 요약해 준 자료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검증하는 역할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요하게 질문하면서 자료의 진정한 의미나 방향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AI의 생성하기 버튼을 누르는 오퍼레이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AI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 : 질문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 AI로 쓰고, AI로 읽고, AI로 심사하는 시대를 바라보며

글 : 유철현 BLT 변리사 / 유 변리사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팁스(TIPs)프로그램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글 : 외부기고(contribution@plat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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