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페타레의 한 거리가 노점상과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AP 연합뉴스 |
아시아투데이 김도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을 사실상 미국 영향권에 두려는 구상이 국제 석유시장의 권력 균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 유가 하락 속에서 시장 점유율 방어에 고심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로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을 미국 통제 아래 두고,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미국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한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증산과 배럴당 50달러 수준의 유가를 공개적으로 선호해 왔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낙후한 유전을 복구하고 생산된 원유를 국제 시장에 유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OPEC 창립 회원국인 베네수엘라의 생산량이 미국 관리 아래 놓이게 되며,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미국의 영향력은 한층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정상화에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소폭의 증산만 이뤄져도,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국제 유가를 추가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이로 인해 OPEC 회원국들은 난처한 선택에 직면했다. 감산을 통해 가격을 방어할 경우 시장 점유율과 재정 수입이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증산을 유지하면 유가 하락 압박이 커진다. 여기에 예측이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관리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데이비드 옥슬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각국이 자국의 이해를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곰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긴장이 글로벌 석유시장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걸프 지역 OPEC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베네수엘라가 규제를 완화해 미국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할 경우, 향후 1~3년 내 하루 200만 배럴의 추가 생산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생산량은 하루 100만 배럴에도 못 미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당분간 상황을 관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베네수엘라의 생산 능력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미국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위해 법적 안정성과 향후 행정부까지 구속할 수 있는 보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고유황·중질유 비중이 높아 품질과 수익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걸프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중국 유입을 차단할 경우, 중국이 중동산 원유에 더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가이아나, 베네수엘라, 미국 본토 생산량을 합칠 경우 미국이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30%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제 유가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묶어두고, 글로벌 에너지 권력 지형을 재편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저유가 압박에 대응할 전략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회의에서 OPEC과 러시아는 올해 1분기 동안 증산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지난해 국제 유가는 전 세계적인 증산과 경기 둔화 우려로 급락했다. JP모건은 올해 평균 유가가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변수와 관계없이 저유가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배럴당 50달러 이하의 장기 하락은 미국 셰일 업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증산보다 자본 지출 억제를 선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생산 원가는 낮지만, 재정 균형을 위해서는 훨씬 높은 유가가 필요하다.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재정 부담과 '비전 2030' 추진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WSJ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장악 시도가 OPEC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국제 석유시장의 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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