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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황금 함대’와 한화의 ‘원잠’...美 전문가들이 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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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달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럼프급 전함' 창설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 이름을 딴 ‘트럼프급 전함’ 부활을 골자로 한 ‘황금 함대(Golden Fleet)’ 계획을 발표하며, 호위함(Frigate) 건조 파트너로 한국의 한화오션을 지목했다. 같은 날, 한화오션이 인수한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는 “미 해군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한 준비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고 선언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들썩였고, ‘K-조선’이 미 해군을 재건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워싱턴 현지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본지가 인터뷰한 미 해군 및 방산 전문가 6인은 “한국의 조선 역량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하다”면서도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장벽과 한계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견고하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Rhetoric)와 한화의 야심 찬 선언 사이, 실현 가능한 현실은 어디쯤일지 워싱턴의 조선 전문가들을 통해 4가지 쟁점을 짚어봤다.

①필리조선소 호위함 건조

군함 건조 경험이 전무한 상선 위주의 필리조선소가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황금 함대’의 호위함을 찍어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숙련공 부족’과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규제를 최대 난관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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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카바스 미 해군 전문 저널리스트.


30년간 미 조선소 현장을 누빈 ‘디펜스 뉴스’ 출신 크리스 카바스(Chris Cavas) 해군 전문 기자는 본지 통화에서 “군함 건조에는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레이더, 센서, 무기, 엔진들을 모두 다른 업체들이 만든다”면서 “조선소는 배에 설치해야 하는 이러한 장비들의 납품을 모두 통제할 수 없다. 팬데믹 이후 더욱 악화된 미국의 (붕괴된) 공급망을 다루는 건 거대한 문제다. 한화가 미국에서 마주하게 될 문제”라고 했다.

그는 미국 연방정부가 조달하는 물품의 경우 부품의 60~75%를 미국산으로 써야 하는 ‘바이 아메리칸법(Buy American Act)’을 거론하며 “일본에서, 한국에서, 독일에서 부품을 더 잘 구할 수 있다고 하면 의회 의원들은 ‘글쎄, 그 부품들을 클리블랜드에 있는 내 지역구 회사에서 사길 원한다’고 말할 것”이라며 “알다시피 조선소는 이를 거부할 통제권이 없다”고 했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한국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철강, 엔진, 기자재를 가져와 조립하는 데 있지만 미 해군 군함을 납품하려면 ‘바이 아메리칸법’ 규정에 따라 비싸고 납기도 느린 미국산 철강과 미국산 엔진, 미국산 레이더 등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별개로 거대 전함으로 이뤄진 트럼프의 ‘황금 함대’ 계획에 대해 “애초 이 전함 얘기는 시간 낭비, 돈 낭비, 모든 것의 낭비”라며 “절대 일어나지 않을 아마추어적인 것”이라고 혹평했다. 앞서 상당수 군사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황금 함대’ 구상이 항공모함·대형 전함 중심의 냉전식 해군 개념으로, 드론·잠수함·미사일이 주도하는 현대 해전 양상과 어긋나는 시대 역행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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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랩스 미 의회예산국(CBO) 해군 전력·무기 선임분석관.


에릭 랩스(Eric Labs) 미 의회예산국(CBO) 해군 전력·무기 선임분석관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그는 “한화의 최신 경영 기법이 미국 조선업을 부분적으로 개선할 수는 있겠지만 외국 경영진이 들어온다고 해서 미국의 높은 임금 구조, 간접비, 미국산 조달 부품 비용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며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수준은 미국의 60% 정도이고, 중국은 그보다 훨씬 더 낮다. 선박 건조 비용의 40%가 인건비인 상황에서 (값비싼 미국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한) 이는 극복하기 엄청난 부담이며, 상대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필리조선소에서 새로운 호위함을 건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는 필리조선소가 호위함 설계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선박 건조를 신속히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라며 “상업용 선박이 아닌 군함을 건조하는 데 필요한 인력 규모와 다양한 숙련 기술자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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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쿡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국방·안보국 선임연구위원.


신시아 쿡(Cynthia Cook)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국방·안보국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공급망에는 분명한 제약이 있는데, 한화의 공급망 관리 전문성은 한국의 환경과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구축된 것으로 이를 필라델피아에서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보고서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한화의 조선 공급망 관리 역량은 (한국에서) 상업용 선박 건조를 통해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공급망이 붕괴된 미국에서) 공급업체를 발굴하고 강력한 공급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엄청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마법(magic) 같은 건 없다. 오직 고된 노력만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②원잠 진출

한화가 선언한 ‘미국 원잠 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나왔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안보의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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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홈즈 미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 해양전략 석좌교수.


제임스 홈즈(James Holmes) 미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 해양전략 석좌교수는 “미국 시민권자조차 핵 관련 보안 인가(Security Clearance)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냉전 시절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인 도시바의 기밀 유출 사건을 언급했다. 도시바가 소련 해군에 잠수함 소음을 줄이는 데 기여한 제조 기술을 이전하는 바람에 소련 잠수함을 탐지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홈즈 교수는 “이 때문에 수출 통제가 미국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으며, 국방 공동체 내에서는 간첩 행위와 불법 기술 이전의 결과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어졌다. 가까운 동맹국에게조차 보안 인가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의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홈즈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한국이 자체 원잠의 건조를 추진한다고 해도 이를 필리조선소에서 하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대한민국 해군을 위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필리조선소가 과거 해군의 원자력 추진과 관련된 작업을 수행한 적은 없다. 기술적·정치적 이유를 모두 고려할 때 한국이 원잠을 건조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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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화필리조선소 전경. /한화오션


카바스 전문 기자 역시 “원잠은 미국 안보의 ‘성역(Sacred concern)’”이라며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정치적·보안적으로 안 될 이유가 너무 많다”고 일축했다. 그는 “단순히 원자력 추진 때문만이 아니라 잠수함은 선체가 건조되는 방식, 강철을 구부리는 방식, 강철을 용접하는 방식 등이 모두 다르고 기밀 등급도 최고로 높다”며 “이런 기술의 많은 부분은 극도로 엄격하게 보호된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군사 동맹인) 영국하고도 특정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고 했다.

미국 방산 업계에서는 가장 큰 산으로 ‘NAVSEA 08(미 해군 원자력 추진국)’이 꼽힌다. 이곳은 미 원자력 잠수함의 원천 기술을 관리하는 통제탑으로, 동맹국에게조차 기술 접근을 불허하는 ‘외국인 열람 금지(NOFORN)’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원자력 추진 기술에 관해서만큼은 국방장관조차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과 기술 통제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내 한국 소유 조선소에서도 원자력 추진이나 전투 체계 등 핵심 기술 공정에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접근조차 못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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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그래보우 케이토 연구소 부소장.


미국의 폐쇄적 해운법(존스법) 전문가인 콜린 그래보우(Colin Grabow) 케이토 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필리조선소에 발주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2척은 대부분 한국에서 건조될 예정”이라며 “한화도 현재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가 LNG 운반선을 건조할 역량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LNG 운반선조차 건조하기 힘든 조선소가 가까운 장래에 호위함이나 원자력 잠수함을 어떻게 건조할 수 있겠나”라며 “LNG 운반선이 분명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상업용 선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잠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라고 했다.

필리조선소는 한화해운(한화쉬핑)으로부터 지난해 7월 LNG 운반선 건조를 수주했는데, 선체의 핵심 블록을 한국에서 만든 뒤 이를 필리조선소로 운반해 마무리 조립하는 건조 방식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필리조선소는 컨테이너나 유조선 등 일반 상선은 만들어봤지만 LNG 운반선 같은 고난도 선박은 건조 경험이 없다.

③미 군함의 한국 건조

그렇다면 미 군함을 아예 한국(거제·울산)에서 지어 오는 ‘해외 건조’는 가능할까. 미 연방 법률(10 U.S.C. § 8679·번스-톨레프슨법)은 미 군함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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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김 스팀슨센터 한국 프로그램 디렉터.


제임스 김(James Kim) 스팀슨센터 한국 프로그램 디렉터는 “미 해군은 전투함의 해외 MRO(유지·보수·정비)조차 일본·싱가포르 등 미 해군 기지가 있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며 “현재 한국에서는 MRO도 (비전투함이 아닌) 전투함은 할 수가 없다. 전투함을 MRO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건조까지 한다는 건 단기간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불확실성의 트럼프이기 때문에 기존까지 불가능했던 어떤 것도 어느 날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의지 여하에 따라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홈즈 교수는 “전투함 건조는 어디에서 건조하느냐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미국의 법과 정책은 한화오션이나 HD 현대중공업, 혹은 일본이나 유럽 기업으로부터 전투함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매우 까다로운 문제로 만든다”고 했다. 카바스 전문 기자는 “트럼프 임기 내에 미 군함이 한국에서 건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법안들이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④11월 중간선거 불확실성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예정된 미 중간선거가 ‘황금 함대’ 계획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바스 전문 기자는 “11월 이후 공화당이 상·하원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의회가 ‘황금 함대’ 사업을 (예산 배정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멈출 수 있다”며 “트럼프는 지금도 원하는 대로 서명은 할 수 있겠지만 행정 명령만으로는 함대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김 디렉터는 “지금 아무도 (‘황금 함대’를) 언제 하겠다는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며 “공화당도 먼저 다루려는 이슈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뒤로 미루고 이 문제를 중간선거 전에 하는 게 맞는지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조선 협력 대미 투자의 성공 가능성이 제일 높은 국가는 한국”이라며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10년 후, 20년 후까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인력 문제 등 여러 구조적인 제약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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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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