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테라 위성에 탑재된 센서 모디스(MODIS)가 5일(현지시간) 찍은 사진으로 오만만과 이란 남부 및 파키스탄 남서부에 위치한 마크란 지역(중앙), 호르무즈 해협(왼쪽), 그리고 오만 북부 해안이 보인다./AFP·연합 |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원유 시장이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지역별 가격 괴리가 확대되는 구조적 왜곡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25일(현지시간) 제기됐다.
◇ [원유] 벤치마크 무력화한 '160달러 충격'…아시아발 가격 전이 확산
아시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중동산 원유가 지난 23일 배럴당 160달러에 거래되며,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는 브렌트유와 90달러 수준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를 크게 웃도는 이례적 가격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두바이유는 올해 들어 150% 이상 급등했으며, 브렌트가 WTI 대비 역사적으로 큰 폭인인 배럴당 12달러의 프리미엄에 거래되는 등 지역별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아시아 수요가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기 위해 전 세계 원유를 끌어들이면서 노르웨이·러시아·콜롬비아·미국산 원유까지 가격이 상승하는 '가격 전이(cascade)'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시민들이 25일(현지시간) 하이데라바드의 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AFP·연합 |
◇ [구조] 호르무즈는 공급, 홍해는 물류…'이중 병목'이 왜곡 촉발
가격 왜곡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충격과 홍해 항로 불안에 따른 물류 차질이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로 하루 약 1600만배럴의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중동산 원유 가격 상승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반면 홍해 리스크는 공급 자체보다 물류에 영향을 미친다. 로이터통신은 서방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한 홍해 선박 보호 작전이 실패하면서 주요 해운사들이 항로를 회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운송 비용과 운송 시간을 증가시키며 시장에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요인이다.
로이터는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보다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 방어가 더욱 어려운 과제라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위험 구역이 홍해보다 5배나 넓고, 가파른 산악 해안선을 활용한 드론·기뢰·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
현재 호르무즈와 홍해가 동시에 불안정해지면서 글로벌 해상 공급망 전체가 흔들리는 '이중 병목' 구조가 형성됐다.
결국 공급 감소와 물류 왜곡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은 가격 상승과 함께 지역별 가격 괴리가 확대되는 구조적 왜곡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의 에너지 시설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FP·연합 |
◇ [LNG] 붕괴된 '에너지 안전판'…카타르발 불가항력 연쇄 충격
이 같은 시장 왜곡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결과라는 평가다. WSJ는 이번 사태가 원유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 충격'으로 작용하며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안전판'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라스라판 시설이 손상돼 LNG 생산능력의 약 17%가 감소했으며, 카타르에너지는 전날 한국·이탈리아·벨기에·중국과의 LNG 장기 공급 계약 이행을 일시 중단하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WSJ는 LNG가 전략적 비축이 제한적이고 대체 수송 경로가 부족하며, 초저온(화씨 영하 260도) 기반 고도의 특수 인프라이기 때문에 복구가 어렵다는 점에서 충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LNG 시장은 유럽과 아시아가 제한된 물량을 놓고 경쟁하는 '제로섬 입찰 경쟁(zero-sum bidding war)'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카타르에너지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이 2일(현지시간)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도시에서 가동되고 있다./로이터·연합 |
◇ [전망] "복구에만 수년"…반도체·농업으로 번지는 가스 충격
WSJ는 LNG가 과거 에너지 위기에서 공급 공백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공급망의 취약 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에너지 전문가 아디 임시로비치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가스 시장 정상화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또 LNG 부족은 비료 생산과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헬륨 공급에도 영향을 미치며 산업 전반에 연쇄 충격을 줄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진행된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의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AP·연합 |
◇ [시장] 미-이란 협상, '조심스러운 낙관론' 이면의 불안…인플레이션 압력 확대
시장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협상 가능성에 따른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나타나고 있다.
WSJ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이란과의 '생산적인 대화'를 이유로 에너지 인프라 타격을 5일간 연기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일시적으로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하락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레이더들은 협상이 지연될 경우 현재의 가격 왜곡이 미국과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WSJ는 원유 가격이 실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의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현재의 충격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분석했다.
WSJ는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산업 생산을 제약하며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특정 해상 요충지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구조가 근본적인 리스크로 작용하며,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이 장기적으로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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