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 테헤란 석유 저장 시설에서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P·연합 |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이란은 25일(현지시간) 미국의 종전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미국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지도부가 종전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는 등 상반된 신호를 보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오는 28일 조기 휴전을 전격 선언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그 전에 이란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종전 협상과 전면 충돌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트랙' 국면이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군사 압박을 병행하고 있고, 외신들은 이란이 공개적으로는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은 15개 항 종전안을 통해 핵·미사일·호르무즈 해협까지 포괄하는 구조적 요구를 제시한 반면, 이란은 전쟁 배상과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휴전 등을 포함한 조건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어 양측 간 간극은 여전히 크다.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AP·연합 |
◇ 백악관 '강온 양면'…"생산적 대화" 강조 속 "지옥 부를 것" 경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특히 "미국은 지난 3일 동안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왔다"며 "이란 정권이 탈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된 15개 종전안과 관련해 "일부는 사실이지만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면서도 구체적 내용 공개는 거부했다.
동시에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였다. 레빗 대변인은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의 핵심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며 "군사작전은 계속되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란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어느 때보다 더 큰 타격을 입게 할 것"이라며 "지옥을 불러올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AP통신은 백악관이 협상 상대를 밝히지 않고 있어 협상 구조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이 13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전통적인 쿠드스의 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이란 IRNA·UPI·연합 |
◇ '대외 강경·내부 검토' 이란 이중 전략…외무 "美, 협상 거론은 패배 인정"
이란은 공식적으로 미국 제안을 거부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이날 국영 TV 인터뷰에서 "현재 정책은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며, 진행 중인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중재자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으며, 이란 지도부가 중재국을 통해 미국이 제시한 평화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비공식적인 조율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는 "미국이 당초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다가 이제 와서 협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패배 인정"이라며, 이란의 그간 보복 타격이 '역사적 황금기'를 장식했다고 자평했다.
또한 주변국을 향해서도 "미군 기지는 수용국에 안보를 제공하기는커녕 불안정의 근원이 됐다"며 "미국-시오니스트(유대인 민족주의자)의 침략 행위로부터 거리를 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초기 반응은 부정적이었지만 여전히 제안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파키스탄을 통해 전달된 15개 항 제안에 대해 이란이 공식 답변을 지연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란 관리들이 대외적으로는 협상에 대해 신랄한 경멸을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물밑에서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도 "이란은 휴전안을 일축했지만, 대화에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이란이 파키스탄에서 미국 협상가들과 만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란 의원들이 1월 11일(현지시간) 테헤란 의사당에서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으로 영상에서 컵처한 사진./로이터·연합 |
◇ 이란 군부 '강경론' 부각…헤즈볼라 전선 연계로 협상 복잡성 확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군사령부가 미국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주장을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미국의 요구가 핵시설 해체와 미사일 제한 등 체제 핵심을 겨냥하고 있어 군부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에 동맹 세력의 생존을 연계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과 로이터 등은 이란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의 전투 중단이 수반돼야 한다는 입장을 중재자들에게 통보했다고 전해, 전선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 美 15개 항 종전안 윤곽…제재 완화 조건으로 '핵시설 해체' 압박
미국은 파키스탄 등 중재국을 통해 이란에 15개 항의 종전안을 전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 호르무즈 해협 개방 △ 탄도미사일 수량·사거리 제한 △ 미사일 용도 자위용(self-defense only) 제한 △ 핵무기 포기 △ 우라늄 농축 금지 △ 핵시설 해체 △ 대리세력 지원 중단 △ 핵 투명성 확보 △ 국제 사찰 수용 △ 전쟁 종결 선언 등을 제안했다. 그 대가로 △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 부셰르 시설의 민간 원자력 발전 지원을 내걸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계획의 핵심이 고농축 우라늄 제거라고 했고, NYT는 이 계획이 핵·미사일·해상 통로를 모두 포함한 '포괄적 협상 틀'이라고 평가했다.
◇ 이란 5개 조건 역제시…"종전은 우리가 결정·타격이 자체 보장"
이란은 관영 프레스TV를 통해 미국 제안을 "비현실적이고 과도하다"고 규정하며 거부했다. 이란은 △ 침략·암살 중단 △ 전쟁 재발 방지 △ 전쟁 피해 배상 △ 전 지역 전쟁 종결 △ 호르무즈 해협 주권 인정 등 5개 조건을 역제안하며 "전쟁 종료 시점은 트럼프가 아니라 이란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보장 없는 휴전은 악순환일 뿐"이라며 파괴된 시설에 대한 배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국제적 보장은 100% 신뢰할 수 없다"면서 이란 국방군이 가한 최소 81차례의 보복 공격이 적에게 전쟁을 다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란만의 '내재적 보장'을 창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 경제의 뇌관이 된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 우방국인 중국·러시아·인도·이라크·파키스탄에는 통행을 허용했지만, "적에게 해협을 통과하게 할 이유는 없다"며 미국의 전면 개방 요구를 일축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테러 정권 본부에 대한 대규모 공습 장면이라면서 공개한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AFP·연합 |
◇ '조기 휴전' 경계하는 이스라엘…트럼프 선언 전 타격 확대
이스라엘은 미국의 조기 종전 가능성에 극도로 긴장하며 군사작전을 서두르고 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고위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이란과 15개 항에 대한 최종 합의를 마무리하기 전, 이르면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휴전을 선언할 가능성에 이스라엘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측에서 4~6주로 예상했던 전쟁 타임라인과 관련해 레빗 대변인이 "예정보다 빠르고 매우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맞물려 이스라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포괄적인 합의 도출 가능성은 낮지만, 일반적인 기본 틀 수준의 합의는 실현 가능하다"며 강한 경계심을 표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간극'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유혈 사태를 우려해 네타냐후 총리의 '이란 봉기 촉구' 제안을 거부했다고 TOI가 전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에 대응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에얄 자미르 참모총장·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대외정보기관) 국장 등 안보 수뇌부를 소집해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전체 안보 내각 회의도 소집된 가운데, 이스라엘 지도부는 미국의 휴전 선언 전에 이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최대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핵심 타격 목표물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등 지난 24시간 동안 작전 계획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 국가 대사들은 단순 휴전이 아닌 이란의 무기 프로그램 해체 등 '결정적 결과'를 요구하고 있어 향후 종전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미 지상군 7000명 전개…기지 파괴로 초유의 미군 '원격 전쟁'
군사적 대치 수위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82공수사단 2000명·해병대 약 5000명 등 7000명 규모 지상군을 중동에 전개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 병력 이동이 지상 공격 옵션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전했고, NYT는 이 병력이 이란 핵심 원유 수출항인 하르그 섬 점령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국 항모를 겨냥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란의 대대적인 타격으로 기존 13개 핵심 미군 기지 중 일부가 심각하게 파괴되면서, 상당수 미군 병력이 현지 호텔 등에서 '원격 근무' 형태로 전쟁을 수행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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