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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갑작스런 방중 연기, 왜? : 계산기 뒤에 숨은 '가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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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동아대 교수]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어느덧 보름을 넘겼다. 중동의 하늘에는 여전히 미사일과 드론이 오가지만, 이 전쟁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폭발음만이 아니다. 그 뒤편에서는 훨씬 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정치 일정과 에너지 시장, 금융 리스크를 계산하는 '계산기의 소리'다.

갑자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말 예정됐던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연기했다. 공식 이유는 "외교 일정 조정"이지만, 그 정치적 의미는 훨씬 분명하다. 중동 전쟁의 출구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것은 협상력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에게 중동 전쟁은 단지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협상 카드이기도 하다.

계산으로 움직이는 전쟁, 계리적 전쟁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손익 계산과 리스크 관리의 논리가 깊숙이 개입한 '계리적 전쟁(Actuarial Warfare)'의 양상을 띠고 있다.

계리적 전쟁이란 전쟁을 군사적 승패가 아니라 비용·위험·시장 충격을 계산하며 관리하는 방식을 뜻한다. 보험과 금융에서 사용하는 계리(actuarial) 계산처럼, 국가들은 전쟁의 손실과 정치적 이익, 에너지 가격, 금융 시장 반응까지 모두 고려해 작전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조절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이미 승리했다"고 말하면서도 군사 작전의 지속을 선언했다. 반면 이란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오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맞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주장처럼 보이지만, 두 메시지의 핵심은 사실 같다. 전장의 점령보다 정치적 서사와 경제적 계산을 우선한다는 점이다.

파괴된 군사력, 그러나 끝나지 않는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이 수행한 침공작전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는 이란의 재래식 군사력에 큰 타격을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군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능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음에도 이란 체제는 빠르게 재편되었고 새로운 지도부는 즉각 전쟁 지속을 선언했다. 이는 현대 전쟁의 특징을 보여준다. 군사력의 물리적 파괴가 반드시 정치적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란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네트워크형 저항이다. 이란은 군사적 정면 충돌 대신 에너지와 물류 체계를 겨냥하고 있다. 특히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선별적으로 통제'하는 전략은 상징적이다. 완전 봉쇄 대신 통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시장의 불안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군사력보다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비대칭 전략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시계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전선의 교착 때문만이 아니다. 전쟁을 움직이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트럼프의 정치 시계다.
트럼프에게 전쟁은 군사 작전인 동시에 정치 이벤트다. 그는 중동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확보한 뒤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원한다.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 연기는 바로 그 계산을 보여준다. 전쟁의 출구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중국과의 협상을 시작할 경우 미국의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란의 체제 시계다.
이란 지도부의 전략은 단기 승리가 아니라 지구전이다. 에너지 시장의 불안과 유가 상승을 통해 서방 경제에 부담을 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내부의 전쟁 피로가 커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란에게 종전이란 항복이 아니라 상대가 감당할 비용의 한계를 넘는 순간이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안보 시계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구조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이 목표는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개의 시계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한, 전쟁은 단순한 '종전'으로 끝나기 어렵다.

'종전'이 아니라 전쟁의 재배치

현재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미국이 일정 시점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군사 작전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종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의 성격이 바뀌는 것에 가깝다. 즉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장이 이동하는 것이다.

군사 충돌은 줄어들 수 있지만 갈등은 에너지 시장, 경제 제재, 외교 경쟁의 형태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미국은 공식적으로 전쟁에서 빠져나오지만 지역 불안정의 부담은 다른 국가들과 시장에 분산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평화라기보다 위험을 재배치한 상태에 가깝다.

호르무즈의 파도와 한국의 선택

이 전쟁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안전 확보 참여를 강조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문제는 해상로 보호라는 명분이 특정 군사 작전과 결합될 때 발생한다. 국제 공공재로 여겨졌던 해상 안전이 군사 전략의 일부가 되면 참여국은 중립적 보호자가 아니라 분쟁의 당사자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이 문제를 중국과의 전략 경쟁과도 연결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동맹 협력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을 미중 전략 경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외교적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은 분명하다.

첫째, 참여의 제한성이다.
국제 해상로 안전이라는 원칙은 지지하되 특정 국가를 겨냥한 공격적 군사 작전에는 신중해야 한다.

둘째, 다자주의의 복원이다.
단일 국가의 군사 행동이 아니라 유엔과 국제 협력 틀을 통한 대응을 지지해야 한다.

셋째, 자국민과 선박 보호 중심의 역할이다.
해군력의 운용은 어디까지나 자국 선박 보호와 인도적 지원 범위에 머물러야 한다.

계산기가 만드는 '가짜 평화'

2026년 봄의 중동에서 전쟁은 군대의 작전 지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에너지 시장, 보험 리스크, 정치 일정이 서로 얽히며 전쟁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결국 전쟁의 종료는 정의의 승리나 군사적 완승이 아니라 비용과 효용의 계산이 뒤집히는 순간에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언젠가 선언할지 모를 '평화'는 진정한 화해라기보다 위험을 정리하고 떠나는 투자자의 퇴장과 비슷할 수 있다.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이 '가짜 평화'의 연극에 단순한 조연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다자적 안정을 지향하는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데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거친 파도보다 더 깊은 것은 전략적 판단이다.

그 판단이야말로 중동의 불안정 속에서 한국의 항로를 지켜줄 유일한 나침반일 것이다.

프레시안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주이란한국대사관 인근에서 폭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원동욱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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