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과 K-방산 대표주자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피지컬 인공지능(AI) 연구와 상용화에 주력할 합작법인(JV) 설립을 발표하면서 “안두릴(Anduril) 같은 글로벌 방산 기술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안두릴은 최근 10년 사이 빠르게 성장한 미국 방산 기업으로, AI 기반 자율 방위 시스템과 군용 드론을 내세워 미 국방부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
안두릴은 전쟁 계획과 무기 개발에 AI를 적극 활용해 ‘미군 현대화’를 추진 중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미 육군과 최대 20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기업가치 약 600억달러(약 89조원)를 목표로 진행 중인 투자 라운드에서 최대 80억달러(약 11조9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팔머 럭키 안두릴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안두릴 제공 |
◇ AI·속도전 내세운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은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가 2014년 인수한 가상현실(VR) 기기 자회사 ‘오큘러스 VR’의 창업자인 팔머 럭키(33)가 2017년 설립한 기업이다. 당시 페이스북의 VR 부문장을 지냈던 럭키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친(親)트럼프 단체에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 해고를 당했고, 이듬해 팔란티어 출신 브라이언 쉼프 등 4명과 안두릴을 공동 창업했다.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투자자인 피터 틸이 이끄는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가 안두릴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두릴은 창업 초기부터 “무기 개발 속도가 느리고 관료주의에 갇힌” 전통 방산 기업 비효율성을 비판했고, AI 기술과 실리콘밸리식 속도전을 앞세워 ‘국방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레이 스티븐스 안두릴 이사회 의장 겸 공동 창업자는 “첨단 기술과 민간 자본이 미래 국방 산업의 핵심 동력”이라며 정부 주도로 납세자의 세금을 투입해 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안두릴이라는 사명은 영국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아라곤의 보검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서쪽의 불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과 이를 통합해 지휘·통제하는 방산 소프트웨어가 안두릴의 핵심 기술이다. 안두릴이 개발한 AI 기반 전장 운영체계(OS) 래티스(Lattice)는 무인기(드론)·잠수함·감시 센서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통합 제어하는 이른바 ‘AI 참모’다. AI가 위협 요소를 자동 판별하고 작전을 제안해 전장 상황을 더 빠르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회사는 자폭형 요격 드론 ‘앤빌(Anvil)’,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정찰용 드론 ‘고스트(Ghost)’, 수직이착륙 요격기 ‘로드러너(Road runner)’, 군인이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소형 정밀 타격 드론 ‘볼트 M’ 등의 하드웨어 제품군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미사일 방어 모델링 기업 ‘엑소애널리틱 솔루션스’를 인수해 우주·미사일 방어 사업 확장에도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성 데이터 등을 활용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 ‘골든돔’ 구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인수를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두릴은 미국 외에도 한국에서 HD현대와 무인수상함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호주 해군이 도입할 초대형 무인잠수정 ‘고스트 샤크(Ghost Shark)’를 제작하기로 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60억달러(약 8조9000억원)가 넘는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창립 이후 70억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하면서 기업가치는 지난해 기준 약 310억달러(약 46조5000억원)로 평가 받았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 등 현대 전쟁에서 AI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안두릴과 같은 미 방산 신흥 강자들이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안두릴이 속도전에 치중하는 만큼, 전통적인 방산기업에 비해 안전·검증 체계를 정밀하게 거치지 않아 기술 결함이 자주 발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에는 래티스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미 해군 무인전투함 30척 중 10여척이 오작동을 일으켰고, 안두릴 드론이 미 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 중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크래프톤의 대표 게임 '배틀그라운드'. |
◇ 배틀그라운드 기술이 전장으로?…크래프톤·한화 ‘AI 방산’ 맞손
크래프톤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이번 ‘피지컬 AI 동맹’을 계기로 안두릴의 래티스 같은 AI 기반 전장 운영 소프트웨 개발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양사는 지난 13일 피지컬 AI 기술 공동 개발과 JV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크래프톤은 현실과 유사한 가상 전장을 구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AI·시뮬레이션 기술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실물 기반 방위 산업 인프라에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한화는 크래프톤이 대표 게임 ‘배틀그라운드’ 등 대규모 동시접속 게임 운영에서 축적한 전투 관련 빅데이터와 실시간 데이터 처리 역량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반으로 가상 전장 환경을 구축해 전투기 조종 훈련을 하거나 전술과 무기 성능을 미리 검증해볼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목표로 하는 무인화 무기 체계 개발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미 최대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은 게임 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의 게임 개발 플랫폼인 ‘언리얼 엔진’을 조종사 훈련, 자율 무기체계 실험·실증 등에 활용해왔다.
이번 행보는 크래프톤이 추진 중인 사업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도 풀이된다. 크래프톤은 대표작 배틀그라운드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이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지만, 단일 지식재산권(IP) 의존도가 높아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크래프톤은 중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신규 게임 IP를 발굴하고 피지컬 AI·로보틱스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협력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크래프톤의 AI 기술력과 소프트웨어 운영 역량을 한화의 현장 기반 역량에 결합해 실제 환경에서 작동하는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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