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시청 ‘존 윌슨 빌딩’ 앞, 시민 100여명이 “아이스(ICE·미 이민세관단속국) 아웃”, “프리 DC(워싱턴DC를 자유롭게 하라)”를 외쳤다. 시민 활동가 나디아는 연단에 올라 “워싱턴의 사람들은 거리에서든, 한밤중이든, 이민 단속 요원들이 우리와 이웃들을 납치하듯 끌고 가는 일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며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 동조하는 워싱턴시청도 문제”라고 성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루스소셜 캡처 |
워싱턴의 시민단체들은 ICE 반대 운동을 이어오며, 지난해 8월부터 주말 대형 집회뿐 아니라 평일에도 꾸준히 시위를 열고 있다. 주 1회 혹은 격주로 워싱턴의 관계 당국을 돌며 항의 목소리를 낸다. 이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총격 사건으로 르네 니콜 굿(37)이 사망해 전국적으로 ICE 반대 시위가 확산하기 훨씬 전부터 이어진 움직임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에 등장한 새로운 풍경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20일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이 달라지고 있다. ICE 반대 시위를 비롯한 각종 반트럼프·반정부 시위가 잦아졌다. 백악관 이스트윙은 사라지고, 주요 기관 이름에 ‘트럼프’가 붙고 있다. ‘트럼프식 독단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 결과는 분열과 갈등이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등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열광하고, 중도·진보 성향의 미국인들이 이에 반발하며 충돌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시민 활동가 레나는 평일에도 시위가 이어지는 데 대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날, 당국에 우리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야 한다”며 “우리의 수도 한복판에서 무고한 이웃이 잡혀가고, 혹은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는 상황을 더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토안보 수사 요원(ICE HSI)이 개입된 단속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했던 ‘저스틴 넬슨’과 ‘필립 브라운’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준(메릴랜드 거주·29)은 “평화롭고, 민주적이었던 워싱턴이 지난 1년 사이 너무 많이 변했다”며 “수도 한복판을 무장 군인이 오가고, 이민 단속 요원이 시민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 치안을 이유로 주방위군을 배치해 논란이 됐다. 주방위군은 노숙인 텐트를 철거하기도 했다.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지난해 말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이 총격을 가해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파견된 주방위군 1명이 크게 다치고 1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치안 강화’를 강조한다. 켄터키 출신 관광객 트레이시(54)는 “주방위군이 들어와 도시가 안전해진 면이 있지 않겠느냐”며 “마약과 노숙인들이 가득한 도시들보다 워싱턴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펜스 확장, 이름 바뀐 주요 기관
도시 풍경 자체도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연회장을 짓기 위한 목적으로 백악관 이스트윙이 철거됐다. 현재 백악관 옆에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한 크레인이 들어섰다. 백악관 주변도 더 넓은 지역이 펜스로 둘러쳐졌다. 한때는 백악관 앞마당 바로 앞 담까지 시민이 접근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접근이 제한됐다. 멀리서 까치발을 하고 백악관을 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백악관 인근 ‘내셔널 몰’에서 기념품과 생수 등을 파는 지미(39)는 “이전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특히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이 오래 지속할 때는 사람이 너무 없어 장사를 거의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미의 매대에는 백악관을 찾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사 가는 빨간색 ‘마가(MAGA)’ 모자가 놓여 있었다.
워싱턴 주요 기관 일부는 이름이 바뀌었다. ‘국방부’는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뀌었다.
1971년 완공 이후 공연 관람 명소로 자리 잡았던 종합예술공연장 ‘케네디센터’는 현재 ‘트럼프-케네디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케네디센터 상주 오페라단이었던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WNO)는 명칭 변경에 반발해 케네디센터를 떠난 상태다.
1980년대 미 의회가 설립한 평화구축 전문 기관 ‘미국평화연구소(USIP)’ 역시 ‘도널드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날 찾은 연구소 건물 외벽에는 기존 ‘평화연구소(Institute of Peace)’ 표기 위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4일 이곳에서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정상을 초청해 평화 합의 서명식을 주관하기도 했다.
◆“트럼프 1년, 갈등 더 극단으로”
전직 연방정부 직원이자 워싱턴과 북버지니아에서 30여년간 거주해 온 크리스틴(61·민주당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주의적 행정 방식이 수도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을 낙담하게 만들었다”며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변 이웃들과도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편이었지만, 트럼프 2기가 시작된 뒤엔 갈등이 더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함께 꾸준히 전국적 반트럼프 시위인 ‘노 킹스(No Kings)’ 집회에 참여해온 그는 다음 집회 때도 참석해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우버 기사 리(62·버지니아 스프링필드 거주)는 “트럼프가 다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민주당의 좌파 정책이 철퇴를 맞은 것이며 다음 선거에서도 쉽게 결과가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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