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월 6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현안 콘퍼런스 휴양회에서 연설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로이터]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베네수엘라 사태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의 전격 체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외교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작전은 단발성 군사 행동이라기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를 바라보는 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윌리엄 A. 갤스턴은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마두로 체포는 트럼프 외교의 방향 전환을 응축해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몇가지 시사점을 짚었다. 핵심은 민주주의나 규범보다 ‘영향권’과 ‘힘’을 우선하는 세계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내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며 국제적 사안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제한에 대해 “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도덕성,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아틀라스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이 인식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2025년 국가안보전략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문서에는 미국이 수년간 방치해온 먼로 독트린을 재확립해 서반구에서의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문장이 적시됐다. 서반구의 지배력은 미국의 안보와 번영의 조건이며, 필요할 때 언제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라는 논리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은 이 전략이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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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체포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의 무게 중심을 ‘전 지구적 책임’에서 ‘영향권 관리’로 옮기고 있음을 상징한다.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이 모든 지역에 동일한 수준의 자원을 투입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한다. 서반구처럼 핵심 국가 이익이 걸린 지역에는 힘을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한 지역에서는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이 흐름 속에서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자신의 영향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험장이 됐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문서는 러시아의 행동을 ‘침략’으로 규정하기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적대 행위’로 표현한다. 이는 도덕적 평가를 최소화하고, 각 강대국이 자기 주변 지역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어느 정도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시각에 가깝다. 결국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조하는 논리는, 다른 강대국의 영향권 주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눈을 감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미국이 동맹과 가치를 앞세워온 기존 외교 노선과 충돌한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논객들은 베네수엘라에 강경하게 나서는 동안, 미국이 대만을 둘러싼 국제적 지지를 얻는 데 필요한 도덕적 고지를 스스로 낮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향권 논리가 확산될수록, ‘힘이 닿는 곳은 각자의 몫’이라는 위험한 합의가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민주주의의 우선순위가 낮아졌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체포 직후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적절한 정권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미국이 개입하겠다는 의미였지만, 민주적 절차보다 단기적 안정과 통제를 중시하겠다는 신호로 읽혔다.
이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야권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아온 인사들은 중심에서 비켜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주목받아온 야권 지도자에 대해 “존경받지 못한다”며 거리를 뒀고, 대신 기존 권력 구조의 일부였던 인물들과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주의 이행은 바람직한 목표이지만, 지금 당장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인식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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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판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석유’다. 베네수엘라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는 2016년 대선 유세 때부터 이라크 전쟁을 거론하며,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승자의 전리품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자원 확보를 외교·군사의 정당화 논리로 사용해왔다.
마두로 축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인프라 복구와 자원 활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베네수엘라 땅에서 엄청난 부를 끌어낼 수 있으며, 그 일부를 미국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권력과 질서를 재편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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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방식은 베네수엘라에 그치지 않았다. 마두로 체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문제를 다시 꺼냈다. 핵심 참모들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현실 세계는 힘과 권력이 지배한다”는 발언은 그의 외교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규범이나 동맹의 감정보다, 힘의 균형과 실질적 이익이 우선이라는 세계관이다.
문제는 이러한 메시지가 부인되지 않는 한, 국제사회는 이를 미국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결단’은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서반구에서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확인된 이상, 미국의 외교는 더 예측 가능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예측 가능성은 안정이 아니라 긴장을 전제로 한다.
윌리엄 A. 갤스턴은 “마두로 체포는 단순한 정권 교체 사건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트럼프 2기 외교가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막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제 민주주의의 전도사라기보다, 영향권을 관리하는 강대국으로 자신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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