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선주사들은 한국 조선사와의 건조계약 협상을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마치며 발주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및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조선사(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HD현대삼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처음 공습한 지난달 28일 이후 현재까지 25일 동안 총 19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전쟁 직전인 2월 4척에 비해 다섯 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3월(20척)과 2024년 3월(16척) 수치도 근접하거나 넘어섰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HD현대 제공 |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신조선 계약 협상이 미뤄지거나 발주가 지연된 사례는 없다”면서 “실무진에 따르면 평소에는 협상을 핑계로 상대가 계약을 질질 끄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오히려 서둘러서 계약을 마무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된 걸 고려하면 빨라진 계약 흐름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게 업계 평가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면에서는 선주사가 선박 발주를 포함한 신규 투자 결정을 미루는 게 일반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옵션이나 가격 등 조건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확실성이 워낙 커지다 보니 오히려 계약이 부드럽게 진행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항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일반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투자심리가 위축된다. 물동량의 변동성이 커지고 수요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선주사는 주문을 미루고 관망한다. 중국 선박에 대한 미국의 규제, 관세 등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컸던 지난해 초(1월~4월)의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439척으로 2024년 같은 기간 980척에 비해 절반 이상 감소했다.
환경 규제도 불확실성을 높여 해운사 발주에 영향을 준다. 지난해 10월 국제해사기구(IMO)는 탄소세 도입 논의를 1년 연기하며 조선소의 선박 수주 불확실성을 키웠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연료도 많이 들고 보유 선박 비중도 높은 컨테이너선은 환경 규제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서 “신조선 발주로 선대를 확장해 얻는 효과와 들어가는 비용을 결정해야 하는데 규제가 확정되지 않으면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쟁의 영향은 더 크다. 물동량 예측이 어렵고,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항로 변경 가능성, 추가 제재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한조선이 건조한 수에즈막스급 원유 운반선. /대한조선 제공 |
그럼에도 최근 선주사가 주문 결정을 앞당기는 건 가격 변동성과 늦어지는 선박 인도 시기 영향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거의 모든 선박의 중고선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신조선가도 언제 오를지 모르다 보니 앞다퉈 발주에 나선다는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어차피 주문해야 할 배라면 주문을 미루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주문해야 선박이 필요한 시기에 받을 수 있다.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발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공급 길이 막혔음에도 생산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선박은 에너지를 일정 기간 저장할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산을 멈추면 재가동 비용 등의 고정비가 크다 보니 탱커 등을 비축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조선사 슬롯(건조 공간)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발주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서일원 기자(11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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