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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득 “언제까지 식민의 흔적만 팔 건가…‘저항의 역사’ 깨워야 목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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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역사·사람 이야기 엮은 ‘토박이 노동운동가’ 손영득
경향신문

손영득씨는 ‘호남 정치 1번지’에서 소수파, 독자파로 지역 기득권과 싸우며 살아간다. 그가 목포의 과거와 현재에서 강조하는 건 저항이다. <목포 목포 목포>에선 대안도 제시했다. 손씨가 지난 21일 목포항에서 촬영에 응하고 있다.


손영득은 1988년 4월 전남 목포 호남고무에서 기습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됐다. 협상하러 갔다가 사측 사주를 받은 구사대와 조폭들에게 지리산, 내장산 모처에 끌려가 감금됐다. 납치 폭행을 신고하자 경찰은 되레 노동자들을 체포했다. 업무방해 등 혐의로 조사를 받다 목격한 건 아식스 운동화다.

“형사들 자리마다 신발 2켤레씩을 넣은, 아식스 로고를 찍은 종이 가방이 보이더라고요.” 회사가 경찰에게 준 건 완성품이었다. 노동자들에겐 명절이면 불량 판정받은, 짝도 색도 맞지 않는 운동화를 선물이라고 줬다.

사람부터 맛집까지 아우르는 ‘토박이가 새로 쓴 목포 이야기’인 <목포 목포 목포>(바오출판사) 한쪽에 흐르는 건 저항이다.

손영득이 현실과 저항 문제를 깨달은 건 1985년이다. 서울 문래동 기독교노동자연맹을 찾았다가 구로공단 노동자 일당으로는 값싼 김치찌개를 하루 세끼 사 먹기도 어렵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 강렬하고 순진한 경험이 나를 노동운동으로 인도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감옥살이할 때 “미하일 숄로호프의 소설 <개척되는 처녀지>(일월서각)를 읽고 목포에 내려가 지역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다짐으로 호남고무에 들어갔다.

저항의 또 다른 동력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였다. 호남고무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고된 노동을 했다. 아침 7시30분 출근해 저녁 7시30분 퇴근했다. 회사 버스를 타고 야간학교로 가 공부했다. “투쟁할 때면 20대 초중반 여자들이 끝까지 끈질기게 버텼어요.” 경외를 느꼈다. ‘여성 노동’을 존중하게 됐다.

경향신문

공장 노동자·청소부·시간 강사
늘 비주류·소수파로 투쟁 일선
수십년 ‘민주당 카르텔’이 지배
정치인들, 지역 문제는 소홀
쇠락·소외는 과거사 오독 탓
근대화 유물, 눈요깃거리 한계
자랑스러운 서사 구슬처럼 꿰어
개방·포용·환대로 새 숨결을

1980년대 후반 ‘목포 해고노동자복직협의회’를 동료들과 만들었다. 목포 최초 노동단체였다. 1990년대 초 민주노동자협의회로 이름을 바꿨다. 1991년에도 감옥살이를 했다. 이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거운동에 몸담았다. 1992년 대선 때 민중 후보 백기완 선거운동 목포지역 본부장을 맡았다. 백기완 득표수는 280표. ‘호남정치 1번지’에서 노동 중심 진보 정치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운동권의 위선과 독선에 환멸을 느끼고 운동을 때려치운”다. 이후 주류나 다수파에 속한 적이 없다. 공장노동자, 시간제 논술강사, 청소부, 택배노동자로 살았다.

저항 의지는 여전했다. 갑질, 임금체불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면 싸웠다. 물류센터 상차 일을 할 때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사측과 다퉜다. 사법시험 공부한 내공으로 민사 소장도 써 제출했다. 코레일에서 청소 일을 할 때는 동료 노동자에 대한 상사의 괴롭힘 문제를 지적하다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독학사 시험으로 법학사, 공학사가 됐다. 산업안전기사, 건설안전기사 자격증도 땄다. <목포 목포 목포>는 “잡학과 통섭”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손영득은 책에서도 저항을 강조한다. 지난달 21일 만난 그는 거리 곳곳을 지날 때마다 저항의 연혁을 줄줄 읊었다. 목포법원이었던 제일교회 자리에선 “암태도 농민들이 아사 동맹했던 곳”이라 했다. 그는 식민지 조선 노동운동에서 최장기 파업 기록을 세운 1926년 1~3월 목포 제유공장 노동자 파업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포는 식민의 도시이면서 저항의 도시예요. 주체적인 각성에 관한 서사와 역사를 목포 오신 분들한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죠.”

손영득은 ‘관광 콘텐츠’에 관한 생각이 개발과 트렌드를 강조하는 목포 주류의 시각과 다르다. 그가 보기에 목포는 “식민의 흔적을 파는 관광사업”에 골몰하지 “저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 하지 않는다. 서산동 ‘시화마을’을 두고 “1980년대 초반 서산동을 노래한 토박이인 동일방직 노동자 시인 정명자의 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책을 쓴 계기와도 이어지는 말이다. 그는 “오늘의 쇠락과 소외는 과거에 대한 오독에서 비롯된 면이 있는 것 같다. 목포 과거를 기출문제 삼아서 현실 해법을 찾는 취지에서 지역 역사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그는 “식민의 흔적과 근대화의 유물만으로는 눈요깃거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역사적 서사를 발굴하고 다양한 재해석을 시도해서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더 나은 목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목포 정치와도 이어지는 문제다. “‘87년 민주화’는 목포지역에서는 정치독점과 일당독재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어요. 더 심각한 일은 수십 년간 이어진 민주당의 독점 카르텔에 그 누구도 정면 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목포 바닥에서 손영득 같은 독자파는 “매향노이자 역적 신세”다. 굴하지 않고 지역 권력자들, 토호들을 매섭게 실명 비판하며 ‘정면 도전’한다.

각종 이슈를 두고 1인시위, 항의방문, 서명운동도 진행한다. 윤석열 탄핵집회 때도 열심히 참여했다. “윤석열을 탄핵했잖아요. 그런데 이곳 독재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어요. 탄핵집회 때 무대 마이크를 뺏다시피 해 ‘대통령 하나 바꾸려고 모인 거 아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했죠.”

“워낙 이완돼 잘 움직이지 않는” 시민사회, “민주당 의석 얻어먹기만 하려는” 진보정당들도 비판 대상이다. 지역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에 몰두하면서 지역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점도 지적한다.

지역 정치에서 강조하는 건 개방이다. “진보 사회의 핵심 가치가 개방입니다. 개방은 계급장이 없는 거예요.” 도시를 살리는 길은 포용과 환대다. “원래 목포는 토박이가 거의 없는 이주자의 도시였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시민으로 권리를 누리고, 의무도 지며, 소비도 하게끔 해야 활성화될 겁니다.” 서민형 공립국제학교 설립 아이디어도 냈다. 다문화·이주노동자 가정 자녀들이 직면한 불공정과 교육의 어려움을 완화하는 맞춤식 교육 실행 기관이다.

손영득은 공장에서 노동하고, 투쟁하던 시절 꿈을 요즘도 꾼다고 한다. 입신출세 같은 꿈은 꾼 적도 없고, 꾸지 않는다. “이웃들한테 뭔가 쓸모 있는 존재로 하루하루 살다 연기처럼 적멸하고 싶어요. 어차피 목포에 살다가 죽을 것 같은데 그렇게 살면 돼요.”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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