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타이칸 4S. 사진=권지용 기자 |
포르쉐 타이칸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 |
포르쉐 타이칸. 사진=권지용 기자 |
포르쉐 타이칸 충전 모습. 사진=권지용 기자 |
포르쉐 타이칸. 사진=권지용 기자 |
포르쉐 로고. 사진=권지용 기자 |
[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천재적인 요리사가 평생을 바쳐온 가마솥을 뒤로하고 최고급 인덕션 레인지 앞에 섰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포르쉐가 브랜드 첫 전기차 타이칸을 내놓았을 때 세상의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에 가까웠습니다. 웅장한 엔진음과 코를 찌르는 가솔린 냄새, 기계적인 질감이 곧 영혼이었던 브랜드가 전기라는 낯선 식재료를 어떻게 요리해낼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르쉐는 역시 포르쉐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배터리를 얹은 자동차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해 '외계인이 고문해서 만든' 다른 차원의 포르쉐를 창조해냈죠.
타이칸은 포르쉐 전동화 비전의 정점이자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전기 스포츠카로 꼽힙니다. 단순히 테슬라의 대항마를 자처하기보다는 70년 넘게 축적한 엔지니어링 정수를 전기 파워트레인 위에 고스란히 이식하는 데 집중한 결과물입니다. 특히 최근 부분변경을 거친 신형 타이칸은 전작의 약점이었던 주행거리를 보완한 동시에 출력마저 무시무시하게 키우며 '전기차 시대에도 왕좌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0.1초의 가속력에 집착하는 포르쉐의 결벽증이 전동화라는 파도를 만나 어떤 괴물을 빚어냈는지 확인해 볼 차례입니다.
전기로 빚어낸 영락없는 포르쉐의 실루엣을 마주하면 이 차가 전기로 가든, 기름을 꿀떡꿀떡 먹든 중요치 않게 됩니다. 영락없는 포르쉐가 눈 앞에 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요. 낮게 깔린 프런트 후드와 볼륨감 넘치는 펜더, 미려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까지. 같은 4도어 세단인 파나메라보다는 포르쉐의 아이콘인 911을 쏙 빼닮았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들은 이 차가 미래에서 왔음을 암시합니다. 공기역학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한 에어 커튼과 히든 타입 도어 핸들, 공기 저항을 줄인 휠까지. 시대를 앞서가는 세련미를 보여줍니다.
운전석에 앉으면 포르쉐 특유의 운전자 중심 설계가 돋보입니다. 다섯 개 원형 계기판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필요한 정보를 선명히 전달합니다. 단, 불필요한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고 터치스크린으로 통합한 센터페시아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온도 조절부터 바람 세기, 심지어는 풍향 조절까지 터치로 해야하거든요. 방향 조절은 약간 투 머치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시트 포지션은 명불허전이네요. 배터리가 바닥에 깔리는 전기차 특성상 시트 포지션이 높아지기 쉬운데, 포르쉐는 스포츠카처럼 '바닥에 붙어가는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시동 버튼(전원 버튼이라고 해야 할까요?)은 포르쉐 전통에 따라 스티어링 휠 왼편에 위치합니다. 마세라티 등 일부 브랜드가 '왼쪽 시동'을 고수하는데요, 이는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의 유산입니다. 1923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 경기는 드라이버가 경주차 맞은편에서 대기하다 신호와 함께 차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때 왼손으로 시동을 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넣으면 0.1초라도 빨리 출발할 수 있던 까닭에 왼편에 시동 장치를 왼쪽에 배치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죠. 이후 안전 문제로 드라이버가 달려가는 방식은 폐지됐지만,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브랜드에 상징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전기차 시대에 접어들며 시동 버튼의 기능적 의미는 퇴색했습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 레버만 건드리면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치기 때문이죠. 내릴 때도 파킹 버튼을 누르고 하차한 뒤 문을 잠그면 그만이거든요. 실제 시승하는 동안 이 버튼을 누를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타이칸의 왼쪽 전원 버튼은 단순한 스위치를 넘어 "우리는 레이스에서 태어난 브랜드"라는 자부심을 증명하는 상징적 장치로 자리합니다. 전통을 계승하되 시대의 편의성에 발맞춘 묘한 공존입니다.
도로 위에서 타이칸은 전기차 특유의 이질감을 지워내고 포르쉐만의 주행 질감을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이자 타이칸 라인업의 허리축을 담당하는 '타이칸 4S'는 최고출력 598마력, 최대토크 72.4kgf·m라는 가공할 성능을 뿜어냅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3.7초 만에 주파하는 녀석이죠.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터져 나오는 즉각적인 토크는 시트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히게 만듭니다. 이 감각에 익숙해지면 다시는 내연기관차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죠. 동시에 강력한 힘을 부드럽게 다루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날뛸 때는 거칠게, 차분할 때는 한없이 세련되고 정교하게 힘을 전달하며 도로를 완벽하게 지배합니다.
코너링 성능은 두말하면 입 아프죠. 바닥에 낮게 깔린 배터리 덕분에 무게중심이 극도로 낮아 마치 보이지 않는 레일 위를 달리는 듯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번 페이스리프트의 백미는 새롭게 적용한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PAR)' 서스펜션입니다. 노면 정보를 0.001초 단위로 읽어내며 각 휠의 댐퍼를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이 시스템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려 듭니다. 가속할 땐 앞머리가 들리지 않게 누르고, 급정거 시엔 앞코를 박는 현상(노즈 다이브)을 원천 차단합니다. 심지어 코너를 돌 때는 모터사이클 라이더처럼 차체를 안쪽으로 살짝 기울여 원심력을 상쇄하는 묘기까지 부립니다. 덕분에 와인딩 로드에서 타이칸 4S는 육중한 덩치가 무색할 만큼 민첩하고 날카롭게 파고들며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합니다. 쾌적한 승차감과 역동적인 성능이라는 양립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기술로 잡아낸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타이칸을 산다면 PAR 옵션은 무조건 넣을 겁니다.
사실 전작은 주행 거리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 주행거리는 둘째치고, 우리나라 환경부 인증 거리조차 300km를 넘기지 못했거든요. 제아무리 포르쉐라지만 전기차라는 한계 앞에서는 아쉬움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신형 타이칸은 달랐습니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고 에너지 소비 효율을 끌어올리며 전기차의 아킬레스건인 주행거리를 기술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부분변경을 거치며 배터리 용량을 93.4kWh에서 105kWh로 대폭 늘렸는데, 극한의 효율을 끌어올린 결과 주행에서는 최대 전비 7km/kWh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배터리만 키운 것이 아니라 모터 효율, 에너지 회생 시스템, 공기저항 제어까지 차량 전반을 유기적으로 다듬은 결과입니다.
주행 가능 거리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배터리를 90%까지 충전했을 때 계기판에는 483km가 찍혔습니다. 기온이 0도에 가까운 추위였는데, 날씨가 풀리고 배터리를 가득 채우면 500km는 가볍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르쉐 타이칸은 단순히 전기를 동력으로 쓰는 차가 아닙니다. 포르쉐가 수십 년간 쌓아온 스포츠카 제작 노하우와 미래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기준점입니다. 낯선 동력원과 시스템 속에서도 포르쉐 고유의 정체성은 더욱 뚜렷하게 빛났습니다.
전기차여도 포르쉐는 포르쉐입니다. 영혼은 배터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간직한 본질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기술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타이칸 4S는 운전의 즐거움과 현실적인 효율성, 그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포르쉐'입니다.
권지용 기자 senna@newsway.co.kr
저작권자(c)뉴스웨이(www.newsw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