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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산사람의 삶으로 되살린 제주 4·3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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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억의 폭풍 속으로'·'4·3, 아카이브로 본 역사' 출간
연합뉴스

제주 다랑쉬굴 4·3 유적 다크 투어
[촬영 조채희]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 제주4·3유적지. 다랑쉬오름 인근 다랑쉬 굴은 1948년 12월18일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토벌대에 발각돼 집단 희생된 곳으로 제주4·3의 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지 중 한 곳이다. 다크투어리즘. 2026.1.4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48년 11월 교사였던 채진규는 마을로 내려온 무장대에 붙잡힌다. 무장대원 중엔 학교 동창도 있었고, 그는 "우리가 이겨야 평화가 온다"며 채진규에게 입산을 종용했다. 채진규는 그렇게 '납치 입산자'가 됐다.

이명복은 시대의 모순과 폭력에 맞서 스스로 산에 올랐다. 1947년 6월 친구의 권유로 남로당에 입당했고, 탄압이 잦아지자 경찰의 눈을 피해 입산했다.

제주 4·3 사건 78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서로 다른 이유로 '산(山)사람'이 돼 4·3의 폭풍에 휘말렸던 채진규와 이명복의 삶을 통해 4·3을 재구성한 책이다.

제주 출신 일간지 기자로서 지난해 퇴직 전까지 4·3 진실 규명에 주력해 온 저자 허호준 씨는 당사자들의 육성과 관련 기록 등을 토대로 4·3을 다른 방식으로 거쳐온 두 사람의 삶을 복원한다.

두 사람은 산에서 만나 삶과 죽음을 함께 오갔다.

채진규는 1948년 12월 18일 주민들이 군경 토벌대에 희생됐던 다랑쉬굴에서 유해를 직접 정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을 포함해 다랑쉬굴에서 희생된 11명의 유해는 지난 1992년에야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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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본 끔찍한 모습을 오랜 시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채진규는 유해 발견 후 찾아온 저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참상을 전한다.

"굴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귀·코에서 피를 흘리고, 여기저기 머리를 처박고 죽었더란 말이오! (중략) 그 불쌍한 어린 아이까지, 연기가 들어오니까 살려고 코를 흙 속에 묻은 거잖소."

개인의 선택이었든, 누군가의 강요였든 산에 오른 채진규와 이명복도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 둘은 가족을 잃었고,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도피와 체포, 석방, 또다시 도피를 이어가야 했던 이명복은 1953년 밀항선에 올라 일본으로 간 후 그리웠던 제주 땅을 두 번 다시 밟지 않았다.

저자는 "채진규와 이명복의 삶은 시대의 증언이자 이 섬의 기억"이라며 "4·3은 대의명분이나 수많은 죽음의 서사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4·3은 인간의 존엄이 짓밟힌 자리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려는 처절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에서 4·3을 세밀하게 재구성했던 저자는 이번 책과 더불어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도 함께 내놨다.

미군정 문서와 외교 전문, 신문기사, 개인 기록 등을 망라해 1945년부터 1957년까지 4·3의 전개 과정을 100개의 장면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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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1117. 300·536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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