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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전쟁 속 문화유산 2만점 사라져…‘전쟁터 피의 유물’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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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라크에서 약탈당해 미국에서 160만 달러(110만 파운드)에 팔린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 AP 뉴시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시작된 이후, 선사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의 문화유산 약 2만 점이 약탈 또는 분실됐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가자지구의 문화유산 파괴와 유물 약탈’을 주제로 한 브리핑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13세기 맘루크 왕조의 유적이자 박물관으로 운영됐던 ‘파샤의 궁전’(정식 명칭 ‘카사르 알 바샤’)에선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군이 진입한 이후 주요 유물이 모두 사라졌다”고도 했다. 실제로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파샤의 궁전에 보관돼 있던 소장품 1만7000점 중 잔해에서 수습된 유물은 ‘비잔틴 석관 뚜껑 조각’ 등 극소수에 그쳤다.

가자 지구 분쟁에 이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문화유산들이 이중삼중의 위험에 빠져 있다. 공습 등으로 건축물 등이 훼손될 뿐 아니라, 혼란스런 정세 속에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2차 피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피의 유물(blood antiquities)’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 치안 공백 틈타 늘어나는 ‘피의 유물’

‘피의 유물’은 전쟁이나 분쟁 중에 약탈 또는 도난 당해 전쟁 자금 등으로 사용되는 문화유산을 일컫는다. 중동 지역 매체 알 아라비야에 따르면 8년 넘게 이어진 이라크 전쟁으로 당시 이라크 각지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고대 유물 1만5000점가량이 무단 반출돼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라크 국립박물관에서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 쐐기 문자 점토판 등은 미국과 유럽의 경매 시장에서 팔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분쟁이 지상전으로 확대되거나 길어질 경우엔 치안 공백이 커지며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구미란 선문대 교양학부 겸임교수(아랍문학 박사)는 “전쟁으로 인해 제도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혼란을 틈타 고가의 유물을 노리는 이들이 있다”며 “이라크 전쟁 때 바그다드 문화유산의 파괴와 반출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해당 지역의 박물관 등의 피해가 계속 늘고 있는 점도 불안요소다. 이란 당국에 따르면 17일 기준 공습으로 훼손된 문화유산과 박물관은 최소 56곳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카자르 왕조 유산이자 박물관인 ‘골레스탄 궁전’, 사파비 왕조의 궁전 겸 박물관인 ‘체헬 소툰 궁전’ 등도 훼손됐다. 이스라엘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이트 시티’ 등이 미사일 충격파로 타격을 입었다.

● 불법 반출돼 서구 경매장에서 팔려

‘피의 유물’은 주로 사라진 뒤 잠복기를 거쳐 정식 거래인 척 위장돼 팔리는 경우가 많다. 유네스코가 2020년 공개한 자료 ‘문화유산: 무력 충돌에 얽힌 이해관계’에 따르면 예멘 내전이 발발한 2011년 이후 예멘 문화유산 100여 점이 불법 반출됐다. 유럽과 미국 경매장 등에서 100만 달러에 팔린 것으로 추산됐다.

이예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특임강의교수는 “불법 반출된 유물은 시간이 흘러 국제 암시장이나 골동품 시장으로 유입되고, 무장 세력의 자금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며 “시리아와 이라크 간 분쟁 이후 해당 지역의 고대 유물에 대한 불법 거래가 급증한 전례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때문에 문화유산 밀거래를 막을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PLO 측은 “국제적인 책임 규명이 이뤄져야 문화유산을 겨냥한 공격과 약탈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하산 루하니 전 이란 대통령은 최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분쟁 당사자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문화유산 복구와 보존을 위한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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