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제정 6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당시 헌법위원회 위원이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
마크롱은 2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날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스팽의 사진과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함께 올렸다. “조스팽은 프랑스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단언한 마크롱은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에서 사회당 제1서기를 역임하고 교육부 장관, 총리,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고 적었다. 이어 “고인의 엄격함, 용기, 그리고 진보를 향한 이상은 공화국의 숭고한 비전을 구현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조스팽과 마크롱은 둘 다 한때 프랑스 최고의 명문 학교이자 엘리트 공무원 양성소였던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다. 좌파 사회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점도 공통적이다. 다만 조스팽이 ENA 졸업 후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정계에 입문한 것과 달리 마크롱은 재무부 관료로 출발했으나 일찌감치 공무원을 그만두고 민간 투자은행으로 옮겼다.
우파 공화당 출신 자크 시라크 대통령(1995∼2007년 재임) 시절인 1997년 총선에서 야당인 사회당이 압승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정부 수반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同居)정부가 출현했고, 조스팽은 정부 수반인 총리에 올라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 운영에 사실상 전권을 행사했다.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1937∼2026). 사진은 총리로 재직하던 1999년 의회에서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주제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
2002년까지 무려 5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조스팽이 시행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 바로 주 35시간 근무제다.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 39시간이던 법정 근로 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를 대표하는 조스팽은 우파의 시라크,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에 이어 3위로 처지며 결선 투표 진출에 실패했다. 장마리 르펜은 현재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의 부친이다.
큰 충격을 받은 조스팽은 곧바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결선 투표에선 시라크가 르펜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며 연임에 성공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마크롱은 오랫동안 금융인으로 일하면서 정치권 밖에 머물다가 2012년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출범하자 정계에 뛰어들었다. 30대 젊은 나이에 경제산업부 장관을 맡아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곧 사회당의 이념과 노선에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조스팽 내각 시절 도입된 주 35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었다. 마크롱은 현직 장관 신분이던 2015년 8월 기업인들 대상 강연에서 주 35시간 근무제를 강도높게 비판해 여당인 사회당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마크롱은 “오래 전에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좌파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사회당 내부에선 “우리 내각에 (우파 출신 전직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후 좌파와 결별한 마크롱은 중도 성향의 제3정당을 만들어 2017년 대선에 도전했고, 결국 당선돼 현재까지 프랑스 정부를 이끄는 중이다. 마크롱은 임기 중 주 35시간 근무제 개선, 정년 연장, 연금 혜택 축소 등 노동 개혁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의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인 상황에서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마크롱은 이미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져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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