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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칼로 새긴 봄의 문장…이미애 개인전 ‘봄 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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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미애의 개인전 ‘봄 오는 소리’는 하나의 계절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통과해온 시간의 결을 보여주는 전시에 가깝다. 전시는 27일부터 4월 15일까지 경기도 안양예술공원 내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열린다. 개관 이후 처음으로 1·2층 전관을 모두 사용하는 자리다.

스포츠경향

이미애 작가



이미애의 화면은 그려진다기보다, 깎여 나간다. 붓 대신 조각칼을 쥔 작가는 물감을 쌓아 올리고, 다시 파내고, 긁어내는 과정을 쉼 없이 반복한다. 그 행위는 덧입히기보다 덜어내기에 가깝고, 채움이라기보다 비움에 가까운 몸의 기록이다. 그렇게 남겨진 표면은 매끈한 회화의 얼굴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흔적의 피부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꿈꾸는 겁쟁이’ 연작은 제목부터 역설을 품고 있다. 꿈꾼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이지만, 겁쟁이라는 말에는 주저와 망설임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이 상반된 감정을 하나의 존재 안에 겹쳐 놓는다. 그리고 말하듯, 아니 어쩌면 묻듯 이야기한다. 우리는 과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그의 화면에 피어나는 꽃들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다. 붉고, 노랗고, 분홍인 그 꽃들은 어딘가 머뭇거리면서도 끝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감정의 형상이다. 한 번에 피어나지 못하고, 수없이 깎이고 덧입혀진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꽃. 그것은 어쩌면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아직 진행 중인 상태에 가깝다.

이미애의 회화는 분명 구상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언어는 쉽게 해독되지 않는다. 형상은 보이되 고정되지 않고, 색은 감정을 드러내되 의미를 단정하지 않는다.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더 가까워진다. 색과 마티에르는 설명을 거부한 채 감각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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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언제나 설렘- 꿈꾸는 겁쟁이,55x55cm,Mixed media, 2025



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쌓기’와 ‘깎기’는 단순한 제작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처럼 읽힌다. 우리는 무언가를 쌓아 올리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덜어내고 잃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이 지금의 자신을 이룬다. 그의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남겨진 시간의 단면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색채의 깊이에서 이전과 다른 밀도를 보여준다. 겹겹이 쌓인 색은 다시 깎여 나가며 예기치 않은 층위를 드러내고, 그 사이에서 빛은 스며 나오듯 떠오른다. 색은 더 이상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화면 안쪽에서 숨 쉬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애의 작업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본질적인 일부로 끌어안고, 조형적 언어로 번역해낸다는 점에서 동시대 회화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화면은 완결된 이미지라기보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생성되는 상태에 가깝다. 그 불안정성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정직한 삶의 형식일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한 가지 감각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모두 어떤 순간에는 ‘꿈꾸는 겁쟁이’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조차 삶의 일부였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정이다.

한편 이미애의 작품은 서울아산병원 제2전시관에서도 5월 8일까지 이어진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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