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마린원 헬기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EPA]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이란과 이틀간 대화를 나눴다며 이란 발전소·에너지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란 전쟁이 4주차로 접어들며 트럼프 대통령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 이틀간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 지역의 적대행위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심도 있고 건설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시설에 대한 모든 군사적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내내 이란과의 대화가 계속될 것이라며 협상 결과에 따라 군사행동 재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이어가는 동시에 물밑 협상도 병행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를 중심으로 평화 협상안 구상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일제히 긴급 보도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다만 반응은 싸늘했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트럼프의 후퇴”라며 “이란의 전력 기반 시설에 대한 위협은 역시나 공허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며칠 전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공격에 대한 이란의 강력하고 파괴적인 대응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설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대란, 미국의 파병 요청에 협조하지 않는 동맹국들, 지상전 파병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트럼프의 외교·군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짧은 군사행동”으로 규정했지만, 상황은 그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글로벌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있으며, 미국은 주요 동맹국들의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사실상 고립된 모습”이라며 “여기에 수천명 규모의 추가 병력 배치까지 검토되면서 전쟁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전에 대한 공세 확대와 조기 종료라는 두 갈림길에 서 있다"며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든 당분간 세계 경제는 물론 미국 여론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짚었다.
①지상전 투입…미군 사상자, 이란發 중동 타격 불가피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군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CVN 72)의 비행갑판에서 이륙 준비를 하는 제41전투비행대대(VFA 41) 소속 F/A-18F 슈퍼 호넷 전투기의 모습. [AFP] |
미국이 지상전 본격 투입할 경우 이란의 핵심 석유시설 장악이나 해안 병력 투입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이는 미국 내 여론이 반대하는 장기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중시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지금부터 48시간 이내에 아무런 위협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가장 큰 발전소를 시작으로 이란의 각종 발전소를 공격해 초토화(obliterate)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원유 교역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이란의 민간 기반 시설로까지 타격 범위를 넓히겠다며 고강도 압박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미군이 중동 지역에 해병대를 추가 파병하기로 한 데 이어 지상군 투입 가능성에 대비한 내부 준비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상전에 돌입할 경우 미군은 해병대를 동원해 이란의 최대 원유 수출 터미널이 있는 하르그섬이나 호르무즈 해협 인근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란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영유권을 다투는 3개 섬을 점령하는 상륙작전을 명령할 수도 있다.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것도 또다른 가능성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지상전 투입을 감행할 경우 미군 측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섬을 점령한 해병대는 이후에도 그곳을 계속 지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반복적인 드론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란 핵시설을 급습하는 작전 역시 특수부대가 적대 지역을 며칠간 확보해야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카타르 에너지 산업 중심지인 라스라판 산업도시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모습. [EPA] |
중동 국가들이 떠안게 될 위험도 상당하다. 이란은 미국이 자국 전력망을 공격할 경우, 걸프 국가들의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을 타격하겠다고 이미 위협한 바 있다. 실제로 이란은 지난 18일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이 위치한 라스라판 산업도시를 공습했다.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며 커진 정치적 부담도 트럼프 행정부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한때 견고했던 지지층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일부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유가 상승과 병력 투입이 현실화될 경우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화당 전략가 데이브 윌슨은 “유가가 계속 오르면 유권자들은 ‘왜 다시 비싼 기름값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묻게 될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는 순간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②‘셀프 승리’ 선언…걸프국, 이란 위협에 속수무책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1979년 이란 혁명 기념일 행사에서 이란 국기 옆에 전시된 이란산 미사일. [게티이미지] |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선언한 전쟁 목표에 따라 조기 승리를 선언하고 물러날 경우에도 후폭풍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이란전에 대한 군사목표로 ▷이란의 미사일 능력 무력화 ▷방위 산업 기반 파괴 ▷해·공군 무력화 ▷핵 능력 원천 차단 ▷중동 주요 동맹국 보호 등을 군사목표로 제시했다. 언급된 목표들을 모두 달성할 경우 승리를 선언한 뒤 일방적으로 전쟁을 끝맺으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이 경우 중동 지역의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종전을 선언하지 않은 이란으로선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쥔 상태로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미 이란은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종식할 조건으로 ‘불가침 조약 체결’과 ‘배상금 지급’을 제시한 상태라는 점에서 미국의 전쟁 승리 선언에도 중동 지역 내 분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제3국을 통해 전달된 미국과 긴장 완화와 휴전 제안을 거부했다고 사안에 정통한 고위 관리를 통해 전한 바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거의 반세기 동안 페르시아만 원유 흐름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핵심 원칙이었다. 지금 전쟁을 끝내는 것은 그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중동 국가들은 끝없는 갈취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③트럼프의 오락가락 메시지…“스스로 판 이란戰 늪에서 못 빠져나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떠나 플로리다로 향하면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 |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정책 등 주요 정책을 며칠 만에 번복하거나 변경하며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명분과 향후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메시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한국과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7개국에 이란이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호위 작전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동맹국들이 군사 지원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17일 “필요 없다”고 번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트루스소셜에서 “우리는 이란의 테러 정권에 대한 군사적 노력을 점차 축소(wind down)하는 것을 검토하는 가운데, 군사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21일에는 이란을 향해 ‘초토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요구해 전쟁을 축소하려는 기조를 사실상 잠재웠다.
로이터는 “대외 군사개입을 최소화 하려는 공약으로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자신이 촉발한 분쟁에서 명확한 출구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그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고 짚었다.
중동 협상 경험이 있는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트럼프가 스스로 만든 ‘이란 전쟁’이라는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오판’을 지목한다. 이란이 체제 존립이 걸린 전쟁으로 인식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직 미 대사인 존 배스는 “사태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전략컨설팅업체 시추에이션룸의 브렛 브루언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왜 전쟁에 나섰는지,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뉴스 흐름을 주도하는 능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이스라엘 이란 화력 공방 상황.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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