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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人4色 | 전민정] 사제동행전, 박남재와 이세하는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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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Memory-회고지정 고 박남재 화백 회고전(섬진강 미술관) 
2부 Harmony-가족사진 이세하 작가 초대(옥천골미술관)
서울경제TV


순창공립미술관에서 봄을 맞아 뜻깊은 기획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故 박남재 화백의 회고전과 이세하 작가의 기획초대전이 섬진강미술관(기획전시실)과 옥천골미술관(본관)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거장이 남긴 숭고한 궤적과 제자의 새로운 화음이 교차하며 향후 미술관의 운영 방향을 가늠케 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먼저 전시의 부제인 ‘사제동행전’을 주목해 본다. 박남재 화백과 제자 이세하 사이를 잇는 예술적 기운이 흥미롭다. 박남재 화백은 거칠고 과감한 붓질로 찰라적인 인상을 넘어 대상의 본질적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반면 이세하 작가는 시간과 기억 속에 축적된 이질적인 이미지들, 상징들을 낯설게 배치하여 화면을 구성한다. 즉 기술적, 양식적으로 두 스승과 제자의 화풍은 전혀 닮지 않은 듯하다.

이는 한국 미술계의 아카데미즘 안에서 누군가를 사사한다는 것의 고루함을 시원하게 깨뜨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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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원광대 미술교육학과 스승과 제자였던 시기를 뒤로하고 다시 이들이 미술현장에서 만나게 된 것은 십년 전 2016년, 옥천골미술관 개관전에서였다. 즉 이세하 작가가 대학 졸업 후 30여년 만에 스승과 재회한 것이다.

오랜 해외 생활을 접고 돌아온 제자의 몸속에 잠재해 있던 예술의 혼을 다시 강렬하게 자극한 것은 바로 스승의 작품들이었다. <붉은산>(1988)과 <부안군항>(2020) 등 대자연의 기운을 직관으로 담아낸 작품은 이세하에게 필연적으로 다시 작업을 해야 함을 일깨우는 영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박남재 화백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은 어디로 가고, ‘사제동행’이란 가볍지 않은 타이틀에 매칭된 제자가 이세하였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옥천골미술관(본관)에 마련된 이세하 작가의 <2부 HARMONY-가족사진> 전시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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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골미술관 기획전시실은 십여 년 전 작가가 국내로 귀국해 본격적인 작업을 다시 전개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노트에서도 엿볼 수 있듯, 작가는 오랜만에 마주한 스승의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본인만의 고유한 작업 세계를 새롭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두 세계의 경계를 시사하듯, 전시장 한편에는 생명이 태어날 때 거는 금줄의 상징성을 모티브로 한 <Happy Birthday> 설치 작품이 자리한다. 십여 년 전 거장의 전시에 감응한 이후 예술가로서 새롭게 태어난 그녀의 변화를 짐작게 하는 공간 구성이자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깊이 체험한 작가의 문화습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새로운 태어남은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산고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데미안>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라는 문장을 연상시키듯 바이올린은 서서히 성장하여 흰색 캔버스 천을 찢으며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전시공간에서 가장 강렬한 작품은 <노인과 바다>라는 명제가 붙은 작품들이다. 청년 시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심취했던 작가는, 끊임없는 좌절의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어부 산티아고와 살이 뜯긴 청새치에 깊이 감응했던 듯 하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산티아고가 곧 스승 박남재와도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산티아고는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예술가 존재들이며 박남재이기도 하고 이세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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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버려진 나무 팔레트와 바이올린 브리지를 집적해 배의 형상과 청새치를 구현하였다. 바로 옆에는 같은 제목의 평면 작품이 부착되어 있다. 마치 바흐가 구현한 푸가처럼 노인과 바다는 반복되면서도 변주되어 제시되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쳐 현악기 모티브가 발견된다. 이는 단순히 작가의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이올린(불), 첼로(물), 비올라(공기), 더블베이스(흙) 등 각기 다른 음역의 악기들은 관계 속에서 화음을 이루는 존재들을 대변하며, 때로는 화가 자신의 자아나 아버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현악기의 '브리지(Bridge)'다. 브리지는 줄의 떨림을 악기 전체로 퍼뜨려 소리를 내게 하고, 현의 팽팽함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평론가 김성호의 분석처럼, 이는 작가 내부의 '공명(resonance)'이 브리지라는 변환 구조를 통과해 관객에게 '울림(reverberation)'으로 도착하게 하는 하모니의 완벽한 은유이자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작가는 마치 협주곡의 연주자처럼 세상과 감응하며 그 진동을 캔버스와 설치 작품으로 고스란히 뿜어낸다.

이번 초대전의 부제가 <HARMONY - 가족사진>인 이유도 이 연장선에서 명확해진다. 전시장에서는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혈연 중심의 상투적인 가족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세하 작가는 "가족은 형태가 아니라 울림이며, 예술은 그 울림을 붙잡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피상적인 묶음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풍경이며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조화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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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하 작가가 천착해 온 '하모니'는 단순히 마찰 없이 평온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부딪히고 어긋나더라도, 그 차이를 섣불리 지워버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내어주며 공존할 수 있게끔 세심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버려진 폐팔레트를 해체하여 조각한 콘트라베이스 작품이나, 고향 부안의 솔섬 풍광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이오니아식 기둥과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으로 습합되는 화면은 오랜 이국 생활과 내면의 기억이 교차하며 빚어낸 성찰의 결과물이다.

맥락 없이 흩어진 듯한 삶의 파편들은 작가의 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팽팽한 공존의 '하모니'로 조율된다.

2026년 3월 17일부터 4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 특별한 전시가 순창에 잔잔한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봄의 온기와 함께 시공간을 초월해 마주한 두 예술가의 거대한 공명과 따뜻한 선율을 따라, 순창공립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 전민정
지리산 하동에서 예술가유니온을 미술인들과 함께 운영하였고, 최근에는 부안군문화재단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특정한 장소가 갖는 다층적 결이나 지역의 현안을 어떻게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독립문화기획자이다.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선 기자 doks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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