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그러나 우리 교육은 이 책임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한국교총 설문에 따르면 교원의 92%가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되었다고 체감했으며, 2021년 OECD 조사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사실과 의견 구별 능력(digital literacy)이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핵심은 진단의 실패다. 평가체계가 객관적 지표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다 보니 보호자는 학교의 진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교육을 통해 자녀의 학업 상태를 확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에 대한 교육적 신뢰는 흔들리고 학습 지원이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학생의 학업 성취수준 이력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국가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관리한다. 정확한 진단 없이는 누구를 어떻게 도울지 그 방향조차 설정할 수 없다.
다행히 올해 3월 교육부의 '국가기초학력지원포털'이 개통돼 데이터 연계와 누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방향은 옳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초학력 미달의 정확한 지점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산 능력이 부족하다면 연산 능력 강화에 집중해야 하고, 문해력이 문제라면 읽기와 쓰기 중심의 기초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 난독증이나 의사소통 장애 등 학습 어려움이 원인이라면 전문 진단과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 '다층적'이라는 말로 문제를 흐릴 것이 아니라 정밀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집중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확한 진단 없이 사업만 늘리는 방식은 예산 낭비와 자원 분산만 초래할 뿐이다.
개별 학교와 교사에게 해결을 맡기는 방식으로는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기 진단과 전문적 개입이 늦어질수록 회복은 어려워진다. 이는 결국 아이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국가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또는 경계선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원인을 정확히 진단한 뒤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데이터가 학교 간 비교나 서열화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정서·가정 요인은 지역 거점센터 중심의 교육·복지·의료 통합 지원으로 대응해야 한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는 교육적 보호자다. 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담과 학습 지원에 대한 교육적 판단권 역시 보장돼야 한다. 학업 결손 학생을 선별하고 진단하는 일을 낙인이나 인권 침해로 보는 시각은 의사의 진단 행위를 문제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호자가 아이의 학업 결손을 방치하거나 지원을 거부하는 것 또한 아이의 질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은 무책임한 일이다.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듯 학생의 기초학력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높은 신뢰도와 정확성을 갖춘 진단 체계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지속 가능한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초학력은 교육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다. 단 한 명의 학생도 배움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책임이며 국가의 의무다. 정부는 기초학력 국가책임제로 미래세대 삶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juho7611@hanmail.net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 교총 청년위원회 분과위원장,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이사장, 한국교육신문사 대표, 한국교총장학회 이사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목원대 졸업 후 경상국립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뒤 2014년부터 경남 진주동중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2024년 12월 최연소로 제40대 교총회장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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