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제공 |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이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한 현직 의원과 함께 배송 현장 체험에 나선 순간이었다. 이번 동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약속한 이후 약 3개월 만에 이뤄진 첫 현장 행보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에 그칠 것이라는 업계의 관측과 달리 로저스 대표는 밤샘 배송 일정을 끝까지 소화했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그는 전날 밤부터 이어진 배송을 마친 뒤 인근 24시간 콩나물국밥집에서 염 의원과 쿠팡친구(직고용 배송기사)들과 조찬을 함께했다.
이날 메뉴는 6500원짜리 콩나물국밥과 만두였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미국 변호사로 ‘엘리트 경력’만 이어온 로저스 대표가 서민 식당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마주 앉은 모습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를 물류 노동 현장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대중적 생활 공간까지 소통 범위를 넓히려는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로저스 대표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배송 체험 과정의 어려움과 개선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며 “10시간 넘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솔직한 의견을 공유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국밥 식사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진정성 있게 하겠다는 상징적 메시지로 읽힌다”며 “그동안 쿠팡이 보여온 강경하고 방어적인 대외 태도를 완화하려는 전략적 제스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행보는 최근 물류센터 노동 환경과 관련한 각종 조사 및 정치권 압박 속에서 나온 변화로도 해석된다. 로저스 대표는 최근 조사 과정에서 “정부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임직원들에게도 협조를 당부하는 내부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 대응 대신 ‘현장 개선 의지’와 ‘소통 확대’ 전략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쿠팡은 최근 농산물 직매입 확대와 전통시장 기획전 등 지역 경제 연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물류 효율성과 기술 중심 이미지를 넘어 생활 밀착형 유통 플랫폼으로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 같은 전략 변화가 정치권과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브랜드 신뢰 회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로저스 대표는 체험 직후 “고객을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는 모든 근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안전하고 선진적인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밥집 문을 나서는 그의 운동화에는 새벽 배송 현장의 먼지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약속을 지켰다’는 온라인 반응처럼, 이번 상징적 행보가 실제 노동 환경 개선과 규제 리스크 완화로 이어질지는 이제 시장과 현장의 검증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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