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뉴욕 금융시장이 사실상 ‘패닉 장세’에 빠졌다. 주식과 채권, 금이 동시에 하락하는 이례적 장세가 연출되며 시장은 사실상 ‘패닉 모드’에 진입했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이 더 이상 방어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은 현금성 자산으로 피신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장세가 ‘전쟁→유가→인플레이션→금리 상승→자산 동반 하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공급충격형 위기의 전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금과 채권마저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자산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충격은 단순 조정을 넘어 구조적 불안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커지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사진=AFP) |
트럼프 “파병 없다”는데 미군은 중동 증파…하르그섬 점령 하나
2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51% 하락한 6506.48로 마감하며 6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나스닥 지수는 2.01% 급락했고,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0.96% 하락했다.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 지수는 2.26% 떨어지며 최근 고점 대비 10% 하락,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주요 지수는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으며, 이란 전쟁 발발 이후 S&P500은 5% 이상, 다우지수는 약 7% 가까이 떨어졌다. 세 지수 모두 200일 이동평균선을 하회하며 투자심리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란 전쟁은 4주째로 접어들었지만 종료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가 지상군 투입 준비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수천명 규모의 해병대 추가 파병이 진행되면서 확전 우려가 급격히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은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강경 기조를 유지했고, 이란 원유 수출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을 둘러싼 군사 옵션까지 거론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쟁 장기화는 곧바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12달러를 돌파했고,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까워졌다. 이 지역은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수송의 약 20%를 담당하는 핵심 요충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해군사관학교 풋볼팀 미드십맨의 총사령관 트로피 수여식에 참석한 뒤 공을 들고 퇴장하고 있다. (사진=AFP) |
문제는 이번 충격이 단순한 지정학 리스크를 넘어 ‘인플레이션 재점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 기대를 끌어올리면서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이는 금융시장 전반의 동반 하락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실제 미 국채는 3거래일 연속 하락(금리 상승)했고, 유럽과 영국 국채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무려 9.7bp(1bp=0.01%포인트) 뛴 4.38%까지 치솟았고, 연준 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도 7.6bp 오른 3.909%까지 올라섰다. 30년물 국채리도 9.3bp 오른 4.946%를 기록 중이다.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그래픽=CNBC) |
달러는 강세를 이어갔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0.32% 오른 99.55를 기록 중이다. 원·달러 환율도 1505원까지 치솟았다.
금 가격은 2% d이상 떨어지며 4500달러선까지 내려갔다. 420년 만에 최악의 주간 낙폭을 기록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통상 위기 시 상승하는 금마저 급락하면서 전통적 안전자산이 더 이상 방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 가격 하락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가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의 매력이 약화된 데다, 달러 강세와 유동성 확보를 위한 매도까지 겹친 결과다.
이처럼 주식·채권·금이 동시에 하락하는 ‘동시 리스크 오프’ 장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구조적으로 재부상하고, 이에 따라 모든 자산 가격이 동시에 조정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 전망도 급격히 뒤집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올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소멸시켰고, 10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약 30% 수준까지 반영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 기대가 우세했던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파드레이크 가비 ING 글로벌 채권 전략가는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하며 금리를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환경이 형성됐다”며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이러한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준 내부에서도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유가 상승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셸 보먼 금융감독 부의장은 여전히 연내 세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쟁 변수에 따른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줄리아 허먼 뉴욕라이프인베스트먼트는 “연준은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압력 사이에서 어느 쪽도 명확히 우세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월가에서는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호세 토레스는 “초기에는 단기 충돌로 봤지만,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그에 따라 월가의 고통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전쟁 발발 이후 S&P500 지수는 약 5.5% 하락했고, 4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케룩스 파이낸셜의 데이비드 라우트는 “시장이 아직 전쟁 지속 기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바닥이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주식·채권서 MMF로 자금이동…슈퍼마이크로 33.3% 급락
자금 흐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주식과 채권에서 이탈해 머니마켓펀드(MMF)로 자금을 이동시키며 관망세를 강화하고 있다. 네이션와이드의 마크 해킷은 “투자자들이 구조적 포트폴리오 재편보다 일단 현금으로 대기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주 중심의 성장주도 큰 타격을 받았다. 금리 상승 압력에 민감한 빅테크들이 일제히 하락하며 시장 낙폭을 키웠다.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3% 이상 급락했고, 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도 2% 안팎 하락했다. 인공지능(AI) 서버 업체 슈퍼마이크로컴퓨터는 대중국 기술 밀수 혐의로 관련 인사들이 기소됐다는 소식에 주가가 33.3% 급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