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교통사고로 가장 중증의 경추 손상을 입어 신체 대부분의 운동 기능을 잃은 30대 남성. 오랜 재활 치료에도 차도가 없었지만 뇌·기계 인터페이스(BCI) 칩 ‘베이나오-1’을 이식한 후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보조장치를 활용해 서고 걷거나 컴퓨터 커서를 입력하는 등 동작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신경 자체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이식 3개월 후에는 물체를 움직일 수 있었고, 6개월 후에는 두 손가락으로 작은 물체를 집는 데 성공했다. 장과 방광 기능까지 일부 회복돼 생리현상 조절이 아예 불가능했던 이전보다 삶의 질도 대폭 향상됐다.
19일 방문한 베이징 뇌과학연구소(CIBR)에서는 이렇듯 기적같은 변화가 현실로 구현되고 있었다. 지난해 초 처음 임상을 시작했을 때에도 로봇손 등 외부 장치를 활용한 움직임 구현에 그쳤지만 불과 1년 만에 신체의 자생적인 회복 가능성까지 입증한 것이다. 베이징대 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인체 이식 성공 사례도 기존 3명에서 7명으로 늘어났다. 연구 대상 역시 기존 척수손상 환자 중심에서 루게릭병(ALS)과 뇌졸중 환자로 확대됐다. 특히 말을 하지 못하는 ALS 환자의 경우 뇌 신호를 읽어 중국어 의사 표현을 해독하는 사례도 나왔다. 현재 등록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으며 의료기기 승인 및 대규모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베이징 뇌과학연구소와 뇌과학 스타트업 뉴사이버가 2023년 공동 개발한 베이나오-1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와 유사한 ‘뇌 칩’이다. 특이한 점은 말랑말랑한 유연 소재로 제작돼 반창고처럼 뇌 표면에 부착하는 ‘반침습형’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두개골 안쪽까지만 삽입되는 구조로 뇌 깊숙이 전극을 삽입하는 뉴럴링크 같은 완전침습형 대비 뇌손상 위험을 크게 낮췄다. 그러면서도 128개 채널을 통해 동시에 신경 신호를 기록, 반침습형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신호 처리량을 구현했다. 채널 수는 뇌 신호를 읽어내는 측정 지점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정밀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더해 차세대 BCI인 베이나오 2도 동물 실험 단계에 진입하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 기존 1000채널 유선 시스템을 기반으로 512채널 무선 완전 이식 시스템을 구현했다. 베이나오 1과 비교해 채널량이 3배로 늘어나 더욱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인 이식이 가능해졌다. 초소형 고집적 시스템을 활용해 전력 소모 최소화함으로써 외부 소음에 극도로 예민한 신호 전달 과정의 품질을 높였고 멀티모달 디코딩 알고리즘을 적용해 다양한 신경 신호를 통합 분석함으로써 해독 성능을 끌어올렸다.
AI 이어 BCI까지…中 “2030년 선도국” 목표
중국 정부는 최근 BCI 기술 고도화에 국가적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2027년까지 뇌 신호 전송 성능을 높이는 초저전력 고성능 통신 칩 개발을 포함해 핵심 기술 병목을 해소하고, 2030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선도 기업 2~3개를 육성해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양회에서도 BCI는 저공경제, 체화지능(피지컬 AI)과 함께 미래 핵심 산업으로 격상됐다. BCI는 단순 의료기술을 넘어 인간의 뇌 데이터를 직접 다루는 영역으로, 군사 영역 등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어 중국은 이를 미래 기술패권과 국가 안보를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보고 있다.실제 방문한 CIBR 현장에서도 최상의 지원이 제공된다는 게 느껴졌다. 2018년 설립돼 역사가 길지 않지만 1000명 이상의 연구진과 학생, 세계 최고 수준 연구자 40명을 확보했다고 한다. 또 네이처 등 국제 학술지에 총 472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특허 79건을 출원해 31건을 확보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동안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CIBR이 위치해 있는 24만 평방미터 규모의 창핑구 뇌과학 및 BCI 산업 단지는 개념 검증부터 중간시험 허가 신청까지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베이징시는 3억 위안 규모 특별 펀드를 조성해 자본조달을 지원하고, 베이징대·칭화대 등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주거 지원과 자녀 교육 혜택 등을 제공하는 ‘창핑 인재 유치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특히 중국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범용인공지능(AGI)보단 AI 에이전트의 빠른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BCI에서도 실용주의 접근을 택하고 있다. 머스크는 뉴럴링크가 당장은 질병 치료에 활용되지만 최종 목표는 인간이 AI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완전침습형 구조를 택한 것도 뇌 속 신경세포 하나하나의 신호를 정밀하게 읽기 위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정밀도보다 안전성에 무게를 두고 반침습형을 선택했다. 임상 시험을 빠르게 확대해 의료 적용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위에천위 CIBR 박사후연구원은 “우리의 목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류 건강 개선”이라며 “향후 몇 년 내 더 많은 환자들이 이 연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정다은 특파원 down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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