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CGEP) 및 배런스 자료 인용[AI 일러스트=권지언 기자] |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중동 분쟁의 파장이 단순한 유가 충격을 넘어 글로벌 경제 전반의 공급망을 무너뜨리는 '퍼펙트스톰'으로 번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각)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에너지뿐만 아니라 첨단 반도체, 농업, 의약품에 이르는 전방위적 연쇄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르시아만에서 방향을 잃고 떠다니는 유조선들은 이번 사태의 표면적 징후에 불과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발이 묶이면서 유가는 전쟁 발발 이후 50%가량 치솟았다.
하지만 경제의 혈관인 '공급망' 깊숙한 곳에서는 훨씬 심각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크리스 탕 UCLA 공급망 전문 교수는 "대부분이 에너지 시장만 주시하고 있지만, 실제 파장은 훨씬 광범위하며 이제 막 그 여파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 반도체 헬륨·비료·알루미늄까지 '공급 대란'
당장 아시아의 첨단 반도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카타르 등 중동 지역의 에너지 인프라 파괴로 반도체 제조 공정(클린룸 냉각 등)에 필수적인 헬륨 공급이 급감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만 TSMC는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이를 심각한 중기적 리스크로 지목했다.
봄 파종기를 맞은 글로벌 농업계도 비료 가격 급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중동은 전 세계 요소(urea) 공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전쟁 발발 이후 요소 가격은 32% 폭등했다.
물류의 핵심인 디젤 가격마저 한 달 새 38% 뛰어 갤런당 5달러를 돌파하면서 미국 농가들은 백악관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알루미늄 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알루미늄 생산의 약 9%를 차지하는 중동 제련소들의 수출길이 막혔고, 바레인의 주요 알루미늄 기업 알바(Alba)는 이미 계약 이행 불가(불가항력·force majeure)를 선언했다.
◆ 아시아 경제 직격탄…유럽행 의약품 콜드체인 '비상'
역사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와 가스의 약 80%가 아시아로 향하는 만큼, 아시아 국가들은 즉각적인 경제 마비 위기에 직면했다.
인도는 난방과 공장 가동에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PG) 부족으로 일부 식당이 문을 닫는 등 기업 사용량 제한에 들어갔다. 스리랑카는 연료 고갈을 막기 위해 수요일을 아예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도 대학 조기 폐쇄와 기업 연료 배급제에 돌입하며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이다.
공급망 혼란은 의약품 분야로도 전이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은 아시아에서 생산된 의약품을 유럽으로 나르는 핵심 '콜드체인(저온 유통)' 허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공항 폐쇄와 항로 변경으로 물류가 지연되면서 항암제 등 필수 의약품 부족 사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 "시간이 적"…장기화 땐 美 침체 확률 49% 육박
월가는 이번 전쟁의 지속 기간이 글로벌 경제의 명운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사태가 단기에 종료될 경우 경제적 타격이 제한적이겠지만, 수개월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가 100달러 선이 유지되는 장기전으로 돌입할 경우 올해 글로벌 성장률이 0.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씨티그룹은 내다봤다.
JP모간 체이스 역시 상반기 글로벌 GDP가 1.2%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견조해 보이던 미국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 파동과 노동시장 둔화가 맞물리면서 향후 1년 내 미국 경기 침체 확률이 "불편할 정도로 높은 49%"까지 치솟았다고 진단했다.
조이스 창 JP모간 글로벌 리서치 책임자는 "거시경제 전망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전문가 로빈 밀스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각국의 자급자족과 공급망 다변화, 재생에너지 등 화석연료 대체 자원 확보 움직임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kwonji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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