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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성들, 이혼해도 ‘전 남편 성’으로 사는 이유[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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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결혼식 이미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강제하는 ‘부부동성제’를 택하고 있어요. 메이지 유신 당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제도를 본떠 도입한 것인데요. 과거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습이 강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엄연히 선택의 문제입니다. 여성 운동이 활발했던 1970년대 이후 원래 성을 유지하는 여성이 급격히 늘어났거든요. 서양이 개인의 자유를 넓혀가는 동안, 일본은 이를 법적 강제 사항으로 묶어 ‘부부동성제’라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오늘 에디터픽에서는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주장하는 기자 출신 작가 나리카와 아야의 인터뷰를 전해드려요. 그는 남편의 성 ‘이나이’가 아닌 자신의 성 ‘나리카와’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요. 부부동성제로 인해 일본 여성이 실제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일본 정치권은 왜 변화를 거부하며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반대하는지 자세히 알아볼게요.

부부동성제란?


일본의 부부동성제는 근대화 시기 도입된 제도예요. 1898년(메이지 31년) 메이지 민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는데요. 일본 민법 제750조는 ‘부부는 혼인 시 정한 바에 따라 남편 또는 아내의 성을 칭한다’고 규정합니다. 물론 법에는 ‘남편 또는 아내의 성’이라고 돼 있긴 하지만, 극소수만이 아내의 성을 따르고 있어요. 나리카와는 “부부 중 어느 쪽의 성을 선택해도 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95% 이상이 남편 성을 따르니, 여성으로선 강요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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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부동성제의 역사 그래픽. 이아름 기자


‘서류지옥’에 ‘경력단절’까지


일본 여성들은 단순히 이름이 바뀌는 것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일단 행정적 번거로움이 엄청나요. 여권, 운전면허증, 은행 계좌, 신용카드, 회사 이메일 등 모든 서류의 명의를 일일이 변경해야 하거든요. 소셜미디어 계정 정보도 전부 업데이트해야 하고요. 나리카와는 “(혼인신고 이후) 여권이나 신분증을 바꾸기 위해 한두 달 정도 관공서와 은행을 찾아가 창구에서 기다리곤 했다”며 당시의 피로감을 전했습니다.

결혼 전 커리어도 단절됩니다. 결혼 전의 성으로 논문을 발표하거나 경력을 쌓아온 여성들은 성이 바뀌면 그간 일궈온 성취의 연속성을 잃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결혼 전까지 ‘유설희 기자’라는 바이라인(기사 말미에 붙는 필자명)으로 기사를 쓰다가 결혼 후 ‘김설희 기자’로 바뀐다면, 독자들은 두 기자를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러한 단절을 막기 위해 많은 일본 여성은 서류상으로는 남편 성을 따르되, 사회생활을 할 때는 결혼 전의 성(규세·옛 성)을 써요. 하지만 규세를 인정하지 않는 직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서류상 이름과 활동명이 동일인임을 매번 입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리카와는 “기자들은 해외 출장을 갈 때 취재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바이라인과 여권상 이름이 달라 곤란을 겪기도 한다”며 “주변에는 법적 이름을 기자 이름과 맞추기 위해 서류상 이혼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전했어요.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의 우오타니 마사히코 회장 역시 해외 출장 중 여성 임원들이 신분증의 성과 실제 활동명이 일치하지 않아 호텔 투숙이나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혼해도 ‘전 남편 성’으로 산다고?


이혼이나 재혼을 하는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성을 또 바꿔야 하는데, 이미 남편 성으로 쌓아버린 커리어가 다시 한번 끊기기 때문이에요. 2025년 4월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여성 A씨는 혼인 기간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의 성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재혼을 하게 된 A씨는 새 남편의 성을 따르거나, 새 남편에게 전 남편의 성을 붙여야 하는 기막힌 선택지 앞에 놓였어요. 결국 A씨는 혼인 신고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나리카와는 “부부동성제는 여성에게 이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고 분석해요. “이혼 자체도 힘들지만 성을 바꾸는 데 수반되는 복잡한 절차를 생각하면 ‘웬만하면 참자’하며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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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일>의 스틸컷. 마인드마크 제공


“다른 성 쓰면 가족 일체감 파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부부동성제가 ‘차별적 규정’이라며 일본 정부에 4차례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현지 여론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에요. 최근 조사에서도 선택적 부부별성을 찬성하는 응답이 약 70%에 달했거든요.

하지만 변화의 요구는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1990년대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파의 반발로 폐기됐기 때문인데요. “부부가 다른 성을 쓰면 가족의 일체감이 파괴된다”는 것이 보수파들의 논리입니다. 여기에 2015년과 2021년, 부부동성을 합헌으로 본 최고재판소의 판결도 변화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나리카와는 이렇게 반문해요. “부부별성인 한국에서 가족이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나요? 세계에서 일본만 이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선택적 부부별성제 대신 일상에서 옛 성을 더 폭넓게 인정해주자는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나리카와는 이 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우려해요. “성이 두 개로 법제화되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여성도 자기 성을 쓸 수 있잖아’하면서 부부별성제 논의는 없어질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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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로이터연합뉴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결혼 전 성을 지키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나리카와는 강조합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에요. 여성이 성을 바꿔야만 하는 관행은 여성의 낮은 지위를 사회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이는 사소한 불편이 아니라 명백한 여성 차별이죠.”

저는 나리카와의 인터뷰를 읽으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습니다. 온천장을 운영하는 마녀 유바바는 존재의 이름을 빼앗아 상대를 지배합니다. 하쿠는 온천장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에게 경고하죠. “이름을 빼앗기면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돼.” 이름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호칭이 바뀌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여성들이 하루빨리 ‘이름’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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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아시아여성] 부부의 성이 다르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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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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