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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벽에 가로막히는 반도체 피해노동자의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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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윤 반올림 활동가]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양성에서 악성으로

성원은 2011년경 건강검진에서 부신의 갈색세포종(크롬친화세포종, 양성)을 발견해 혹을 제거하고 관리를 하고 있었다. 부신은 양쪽 신장 위에 위치해 호르몬을 생성하는 기관으로 갈색세포종은 1년에 백만 명당 2~8명에게만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추적 관찰하다가 이제 9년째. 선생님이 "그만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까지 나왔거든요. 그래서 '여태까지 이상 없었는데 괜찮겠지.' 근데 그 해에 검진을 받기 전에 두드러기가 임파선 쪽에 막 올라왔거든요. '뭐 잘못 먹었나' 이 생각을 했었죠. 근데 그게 암이 전이가 된 게 몸으로 표현되는 거라 하더라고요. 피부로.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부신에서 악성 종양을 발견했고 임파선으로 전이가 돼 부신암 4기를 진단받았다. 2020년이었다. 항암치료를 거쳐 암세포를 죽이고 회복이 됐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양성 종양 수술한 지 9년 만에 악성 종양을 발견했는데 항암을 한 지 아직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성원은 '이번에는 재발까지 또 얼마나 걸릴까'하는 걱정 속에서 살아간다.

"의학적으로 관련되지 않습니다"

원래 제 병이 이제 30%인가 이게 유전이래요. 근데 유전이 아니라고 나왔거든요. 그러면 저는 25년 동안 회사 이 회사 다니는 것밖에 없고. 그 외적인 거는 집에서 밥 먹고 이런 것밖에 없는데.

부신암은 가족력 없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약 30~40%가 유전자 변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원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유전자 문제가 아니라면 성원이 의심할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2021년 혼자서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제 판정 결과에 보면 "의학적으로 관련되지 않습니다"라는 부분이 제일 싫어요. 제 담당의사분이 내분비과 교수님이라고 하는데 그분한테도 얘기를 했거든요. "저는 산재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그랬더만 "전혀 관계없으세요" 이렇게 얘기하고 "어떻게 관계가 없습니까?" "자료가 없습니다. 그냥 희귀병입니다."

성원은 의사들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내리는 판정 제도의 문제점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라는 정체성을 우선으로 가진 판정위원들은 희귀병이라 연관성을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이 없다'고 답을 한다는 점. 반도체 공정과 사용 물질, 노출되는 위험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 모든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의학적'으로만 접근한다는 점. 성원은 담당의사의 "전혀 관계 없으세요"라는 말, 판정서의 "크롬친화세포종의 원인 물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직업적 요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가지의 문제가 어떻게 관계가 없다는 확신으로 이어져 사회 보장에 대한 거부의 근거로 작용하는가?

성원은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던 반올림을 찾아 연락을 했고 소송을 하게 됐다. 안 하면 후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년 만에 값진 승소를 했다. 판사는 "원고가 담당 공정에서 취급한 수십 종류의 물질이 이 사건 상병을 직접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점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으나, 위 물질이 신체의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해 물질임은 분명하다. 또한 원고가 취급한 유해 물질이 개별 유해 물질별로 노출 위험기준을 초과한 것은 아니더라도 수십 종류에 이르는 유해 물질이 다른 유해 물질과 결합하거나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원고의 신체에 악영향을 미쳐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어도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다.(서울행정법원 판결 2022구단50734)

근로복지공단에서 항소해 아직 확정이 되지 않은 1심의 결과일 뿐이고, 최종 판결이 나온다 한들 법원의 판결이 절대적 진실이라 볼 수 없지만 "의학적으로 관련되지 않습니다"라는 단단한 벽에 균열을 일으킨 셈이다.

정말로 그러한가? 정말로 관련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만약에 승소를 해가지고 완전히 확정 판결이 나면 저는 그 자료를 우리 회사 게시판에 올리고 싶어요. 이렇게 돼 있으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희귀성 질병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신청을 하세요. 판례가 되게 무섭긴 한데 그게 여러 사람한테 도움 되는 판례로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환경에서, 파악도 안 되는 환경에서 계속 일하시는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그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프레시안

▲반도체 공장 풍경. ⓒ박정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성원은 치료 후 빠르게 복귀를 한 편이다. 수술하며 2개월 병가휴직을 했고, 방사선 치료를 하는 6개월간은 야간조를 제외하고 오전, 오후 조로 작업했다. 6개월이 지나자 이전처럼 다시 3교대 근무를 하게 됐다. 항암 치료 후에는 체력이 떨어져 교대 근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환경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된 성원으로서는 계속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직무를 바꾸는 일, 회사를 옮기는 일에 대해서 고민한 지는 오래됐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1심에서 승소를 했잖아요. 2심까지 승소를 하면 잡(짭, job)을 바꿔볼 생각이에요. 회사 인사과랑 얘기를 해서 '내가 속해 있는 이 환경이 내 몸이랑 안 맞다. 그리고 내 환경이 내가 지금 일하는 이 환경이 내 몸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좀 옮겨달라.생산과에서는 어차피 같은 팹에서 똑같이 일을 하는 건데 그것보다는 차라리 예를 들어 구매팀이라든지 그다음에 환경 측정하는 팀 이런 쪽. 팹 바깥에서 일하는 쪽. 사무실처럼 하면서 대신 교대 좀 돌고, 그런 쪽으로 옮겨볼까 생각 중인데 그쪽도 TO가 없어요.

반도체가 점점 변화하다 보니까 우리는 8인치 팹이에요. 8인치인데 지금 저기 하이닉스가 12인치 큰 웨이퍼 쓰잖아요. 우리가 가서 이 웨이퍼 이 장비를 바로 적응 못 해요. 새로운 장비예요.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이 사람 뽑아봤자 그쪽에서는 어차피 새로 다시 (교육을). 그래서 이직이 좀 어렵더라고요.

숙련 기술직이라 이직이 수월하지 않을까 했지만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성원의 회사에서 다루는 장비와 웨이퍼는 어느새 '예전의 것'이 됐다. 웨이퍼는 크고 얇을수록 효율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은 6인치에 8인치로, 다시 8인치에서 12인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성원이 가진 기술도 8인치 웨이퍼를 만드는 이 회사에 한해 유효한 기술이 됐다. 기술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아직은 상상 속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8인치 웨이퍼에 대한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 기술이 더는 필요 없어진다면 일을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결핍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직접 만난 성원은 암 환자였다는 것을 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성원에게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오래 살기 힘들겠다고 회의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기억은 몸이 다시 회복됐다고 사라지는 기억이 아니다. 어떤 흔적처럼 남아 있는 불안이다.

항암 치료를 할 당시에는 '내가 오래 살까' 그 생각이 확 사라져요. 안 느껴 보면 몰라요. 몸의 모든 세포가 히마리(힘)가 없고 힘이 진짜 안 들어가요. 저희가 어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까 제가 자연적으로 돈에 대한, 경제에 대한 '아껴 써야 된다' 그런 게 딱 오잖아요. 우리 애들도 나랑 똑같은 길을 걸어야 된다는 그거 자체가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아서 '애들한테 물려주지 말자. 그래서 오래 살아야 되지 않겠나.' 그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애들이 성년이 돼가지고 독립할 정도 시기까지. 그러면 제가 65살 정도 되고 있더라고요. 그럴 때까지는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나. 너무 일찍 가버리면 그 공백은 애들한테 부담이 확실하게 되거든요. 그건 누가 채워주지도 못 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래 살고 싶죠. 평상시처럼. 근데 환경이 안 따라주네요.

성원이 어려서 겪었던 결핍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책임감으로 버티는 성원이 진정으로 꿈꾸는 삶은 고요하고 평안한 삶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한번 해보고 싶어요.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일부러 낚시도 가고 막 이렇게 하거든요. 돌아다니면서 정말 내가 가고 싶은 지역이 나오면 그냥 거기서 정착하고... 일어나면 '저거 할까 이거 할까? 이거 하지 뭐. 내일도 시간 있는데' 이렇게 하면서 그날그날 하고 싶은 거 하고 그러면서.

성원이 건강하게 살다가 그 삶에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중에 성원이 사는 깊은 자연 속 어딘가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건넸다. 진심이었다. 그런 웃음 나오는 재회를 하게 된다면 후일담을 남겨보려고 한다. (끝)

※ 이름은 인터뷰이 요청으로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임다윤 반올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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