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혁 AWS 한국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총괄 |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 두 대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자연어 한 줄에 3D 인테리어가 완성되며, 휴머노이드 로봇이 관람객 사이에서 산업 현장의 동작을 재현했다.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AWS 유니콘데이 2026'의 전시장 풍경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내건 화두는 명확했다. AI 다음의 투자처로 피지컬 AI를 지목하고, 국내 스타트업이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피지컬 AI, 한국 스타트업에 열린 문"
이기혁 AWS 한국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총괄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를 국내 스타트업이 주목해야 할 다음 성장 영역으로 꼽았다. 근거로 든 숫자는 뚜렷하다. 지난해 피지컬 AI 관련 글로벌 투자는 전년 대비 74% 증가했고,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 규모 4690억달러(약 690조원) 가운데 AI 비중이 48%에 이른다. 이 총괄은 AI 효율이 개선될수록 사용량과 자원 소비가 오히려 함께 늘어나는 '제본스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피지컬 AI가 이 흐름 위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분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은 이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구성이었다. 'AI 익스피리언스 존'에 배치된 5개 스타트업 가운데 로봇 관제(팀그릿), 비전 AI(피치에이아이), 휴머노이드 로봇(에이로봇) 등 3곳이 피지컬 AI와 직접 맞닿아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피지컬 AI
행사장 중앙에 놓인 팀그릿 부스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바퀴형 로봇과 4족 보행 로봇이 나란히 움직이는 가운데, 옆에 선 시연자가 하나의 모니터에서 두 로봇을 동시에 조종했다. 팀그릿의 로봇 관제 플랫폼 '코비즈'는 제조사가 다른 로봇을 단일 인터페이스로 통합 운영하도록 설계됐다. 로봇 영상과 센서 데이터, 위치 정보가 AWS IoT 그린그래스를 거쳐 실시간으로 연결되며, XR 기기를 결합한 360도 영상 스트리밍까지 시연됐다. 관람객 여러 명이 XR 기기를 번갈아 착용하며 로봇 시점 영상을 체험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에이로봇의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ALICE)'가 전시됐다. 제조 현장에서 사람과 나란히 작업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된 이 로봇은 자체 개발 액추에이터를 탑재해 힘과 정밀 제어를 동시에 확보했다. 현장 판단은 로봇 자체에서 처리하고, 대규모 학습과 데이터 분석은 AWS 클라우드에서 진행하는 구조다. 여러 로봇이 축적한 데이터로 모델을 지속 개선하는 방식이어서, 가동 대수가 늘수록 성능이 올라가는 셈이다. 에이로봇은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비전 AI 기업 피치에이아이 부스에서는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관람객의 성별·연령대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그에 맞는 광고 콘텐츠가 자동으로 바뀌는 장면이 펼쳐졌다. 효과 측정이 어려웠던 오프라인 광고에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를 입힌 사례다. AWS 기반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시각화 도구를 활용해 광고 운영 전반을 숫자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AI 에이전트, 인테리어와 스트리밍까지
피지컬 AI 외의 전시도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AI 인테리어 스타트업 아키스케치 부스에서 관람객이 "북유럽 스타일 거실을 만들어 달라"고 입력하자, 가구와 마감재가 자동 배치된 3D 공간이 약 1분 만에 실사 수준으로 렌더링됐다. 주소를 입력하면 실제 아파트 도면을 3D로 불러올 수 있어, 기존에 4~8주가 걸리던 상담·설계·견적 과정을 단일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압축한다. 아마존 베드록 에이전트코어 기반의 AI 에이전트가 도면 분석부터 스타일 제안, 견적 산출까지 전 과정을 처리하는 구조다. 이주성 아키스케치 대표는 "설계의 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면 고객 경험이 바뀌고, 그 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린다"고 말했다.
스트리밍 플랫폼 씨미(CIME)를 운영하는 마플 부스에서는 4K 초고화질 방송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시연자가 화면 앞에서 박수를 치자 약 1초 뒤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 같은 장면이 나타났다. 아마존 IVS를 활용해 저지연 고화질 스트리밍을 구현한 이 플랫폼은 스트리머 수수료를 낮춰 크리에이터 수익을 높이는 모델을 구축했다.
생태계 5개 영역 분류, 지원 프로그램 확대
김영태 AWS 한국 스타트업 세일즈 총괄은 국내 AI 스타트업 생태계를 AI 팹리스, AI 플랫폼, AI 모델 프로바이더, AI 애플리케이션, AI 코딩의 5개 영역으로 구분했다. 인프라에서 모델, 산업 적용까지 전 영역으로 스타트업이 확장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중 AI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가장 많은 기업이 몰려 있으며, 리걸테크·금융·커머스·마케팅 등 산업별 AI 서비스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 프로그램도 다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창업진흥원과 공동 운영하는 '정글 프로그램'은 생성형 AI 스타트업 30개사를 선발해 AWS AI 전문가 멘토링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연결한다. 글로벌 프로그램인 '생성형 AI 액셀러레이터'(GAIA)에는 지난해 전 세계 40개 스타트업이 참여했으며, 최대 100만달러 규모의 AWS 크레딧이 제공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선정 10개 기업에 한국의 리얼월드와 트릴리온랩스가 이름을 올렸다. AWS는 올해 미국·일본 등지의 글로벌 행사와 연계해 해외 진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 세션, AI 전략 사례 공유
기술 전시와 함께 기업 세션도 이어졌다. 차문수 슈퍼브에이아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ZERO)'의 개발 과정과 피지컬 AI 시대 대비 전략을 발표했다. 제조·물류 등 산업 현장에 비전 AI를 적용하는 작업을 AWS 클라우드 인프라 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이사는 법률 특화 AI 서비스 '슈퍼로이어'를 소개하며 변호사의 리서치·문서 작성 업무를 지원하는 사례를 공유했고, 권순일 업스테이지 부사장은 AI 도입에 따른 산업 변화와 B2B 협업 전략을 짚었다.
이기혁 총괄은 "올해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글로벌 진출을 돕겠다"고 강조했다. AWS가 피지컬 AI라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지원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만큼, 이 행보가 실제 해외 시장 성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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