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액 제한·재택근무 확대도
고유가 장기화 땐 침체 불가피
인도, 수입 의존도 85% ‘비상’
러시아산 등 원유 수입 다변화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뉴델리(인도)·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준석 특파원·부 튀 티엔 통신원·프라갸 아와사티 통신원·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이란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 선을 돌파하면서 인도와 동남아시아 신흥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물가 급등과 자본 유출 우려가 동시에 커지자 각국 정부는 재택근무 확대, 현금 보조금 지급, 긴급 재정 투입 등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신흥국 경제가 고유가, 통화 약세, 자본 유출이 동시에 나타나는 퍼펙트 스톰(복합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압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인도, 원유 공급선 다변화
17일 현지 매체와 각국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전쟁 발발 이후 약 2주 동안 신흥국 금융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성장률 하향 압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85%에 달하는 인도는 중동 위기 여파로 최근 2주 사이 증시 시가총액 약 33조루피(약 530조원)가 증발했다. 루피화 가치도 달러당 92.52루피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도 정부는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0.6~1%p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니르말라 시타라만 재무장관은 10조~20조루피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으며 인도 중앙은행(RBI)은 루피화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 개입 여력을 확대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경우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수송로 확보를 위한 외교 대응도 병행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2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던 인도 유조선 2척의 안전 통과를 확보했다. 인도는 동시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며 공급선 다변화에도 나섰다. 이달 기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160만 배럴 수준으로 지난달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GDP 성장률 1~2%p 하향 불가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도 충격을 받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운송업 종사자 113만명에게 총 31억페소(약 730억원)의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필리핀 하원은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될 경우 대통령이 유류 소비세를 즉각 중단할 수 있는 긴급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필리핀 경제 당국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4%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태국 역시 고유가 충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에 재택근무 확대를 지시하고 디젤 가격을 리터당 30~33바트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유가 안정 펀드를 동원하고 있다. 다만 펀드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민간 기업에도 재택근무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연료 사재기 현상이 확산되자 일부 지역에서는 1인당 연료 구매 금액을 약 1000바트 수준으로 제한하는 조치도 시행됐다. 태국 산업연맹(FTI)은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치(2.0%)를 밑도는 1.3~1.6%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트남 정부도 유류 관세를 0%로 낮추고 정유 생산 물량을 국내 시장에 우선 공급하도록 지시하는 등 긴급 대책을 시행했다. 팜민찐 총리는 16일 국무회의에서 "에너지 안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사재기나 가격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베트남의 GDP 성장률이 최대 2%p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산유국 인니·말레이도 고심
산유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역시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유가 상승으로 연료 보조금 지출이 급증하면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재무부는 보조금 확대가 지속될 경우 재정적자가 GDP 대비 3%라는 법정 한도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도 연료 보조금 증가로 인해 올해 재정적자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이에 두 국가는 팜유 기반 바이오 연료 확대 등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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