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한 은행권 제재가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이 과태료와 기관 제재는 우선 확정하되, 수천억~조단위에 이르는 과징금 규모는 추가 논의를 거쳐 결론을 미루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18일 정례회의를 통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의 홍콩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불완전판매 관련 과태료와 기관 제재 수위를 우선 결정할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논란의 중심이 된 과징금 규모는 사안의 파급력과 산정 방식에 대한 이견이 커 추가 검토를 이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과태료의 경우 법적 제척 기간이 있어 일정 시점까지 결론을 내려야 하는 만큼 먼저 처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과징금은 금액 규모가 크고 판단 기준이 복잡한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안은 2023년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ELS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약 4조6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상품 판매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 등 주요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보고 제재 절차를 진행해 왔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앞서 세 차례 심의를 거쳐 은행권에 부과할 과징금 규모를 약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의결한 바 있다. 당초 사전 통보된 2조원대에서 약 30%가량 줄어든 금액이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약 8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2000억원대, 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이 1000억원 안팎 수준으로 알려졌다. 기관 제재 역시 당초 검토됐던 일부 영업정지에서 '기관 경고' 수준으로 완화된 상태다.
다만 금융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과징금 산정 방식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은행권은 ELS 판매 과정에서 얻은 실제 부당이득 규모가 1000억~11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조 단위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부당이득은 은행이 ELS 상품 판매로 얻은 수수료 수익 등을 의미한다. 판매 규모가 가장 컸던 국민은행의 부당이득이 약 500억원 수준이며 나머지 은행들도 판매 규모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은행권은 이미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자율배상을 진행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배상이 이뤄졌고, 대상 고객의 약 97%가 이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에서는 자율배상과 과징금을 합치면 총 부담이 2조70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법원 판결도 제재 논의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민사소송에서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강조되면서 금융사의 설명 의무 위반 여부가 제한적으로 인정된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위험 분석 과정에서 활용된 백테스트 기간의 적정성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과거 데이터를 활용한 위험 분석 기간을 임의로 축소해 투자 위험이 과소 평가됐다고 보고 있는 반면, 은행들은 관련 절차와 설명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첫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례라는 점에서도 금융당국의 부담이 크다. 제재 수위가 향후 금융상품 판매 감독 기준의 선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최종 과징금 규모가 추가 조정을 거쳐 수천억원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 감독 규정에 따르면 위반 행위로 얻은 부당이득의 10배를 초과하는 과징금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감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 제재심에서 이미 상당 부분 감경이 이뤄졌지만 금융위 단계에서 추가 조정 가능성도 남아있다"며 "시장 영향과 제재의 형평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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