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민원실 점검하는 관계자 |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나흘 만에 62건의 심판 청구가 접수됐다. 대법원이 판결문에 상고기각 이유를 달랑 '한줄' 기재하는 관행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재판소원도 제기됐다.
16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 시행 첫날인 12일부터 15일까지 전자접수 31건, 방문접수 5건, 우편접수 8건 등 총 44건의 재판소원 심판 청구가 접수됐다.
전자헌법재판센터상 이날(오후 6시 기준) 제기된 재판소원 사건은 18건으로, 닷새간 누적 62건이 접수됐다. 시행 초기 하루 평균 10여건 접수되는 셈이다.
지난해 접수된 헌법소원 사건의 수는 3천66건이다. 이 추세로 간다면 두 유형의 기존 헌법소원 사건 외에 재판소원 하나만으로 작년 헌법소원 전체 수치를 넘어서는 사건이 쌓일 수 있다.
개정법률 안내문 비치된 헌법재판소 민원실 |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상고기각 이유를 한두줄로 갈음하는 것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재판소원 사건도 지난 13일 접수됐다.
청구인들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송철호 전 울산시장 선거캠프 측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거나 민원 해결 알선 명목으로 수천만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13일 함께 유죄를 확정받았다.
구체적인 범죄사실은 다르지만 판결문에 기재된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는 모두 동일한 내용이었다. 이런 기재는 대법원이 상고이유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유를 내놓지 않고 기각할 때 흔히 쓰이는 문구다.
청구인들을 대리하는 심규명 변호사는 "판결서의 이유는 필수 기재 사항으로, 누락되거나 불명확한 경우 절대적 상고이유가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는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대법원이 판결서에 판결의 이유를 완전히 누락하더라도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며 "개정된 재판소원을 통해 비로소 정당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이 사건 판결은 그 심리가 있었음에도 판결문에 그 과정이나 판단이유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 단순한 상고의 인용이나 기각을 넘어 대법원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청구인의 헌법에 기반한 당연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며 "그 방식도 모든 사건에 대해 한 줄의 유사한 문구로 여러 청구인의 다양한 상고이유를 일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재판이 상고심절차특례법상 심리불속행 기각의 취지와 유사한 소송경제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청구인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과 신뢰 훼손은 소송경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며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총경도 정직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데 불복해 재판소원을 내겠다고 예고했다.
류 전 총경은 "상사의 명령이 불법적이지만 않으면 부당하더라도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법원에서 졌는데, '경찰국을 반대한 것은 양심의 자유'라는 점에서 징계와 관련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소원 관련해 발언하는 손인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닷새간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대부분 이같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한다.
재판소원은 1, 2심에서 판결이 확정돼도 청구가 가능하지만, 가능한 상소(항소·상고)를 포기하고 재판소원을 내면 보충성 원칙 위반으로 각하될 수 있다는 게 헌재 설명이다.
공권력의 행사·불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다만 기본권이 침해됐더라도 사법적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를 모두 경유하고서 비로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재판소원 역시 다른 법률적 구제 절차가 있는데도 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청구하면 헌재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판소원을 청구하면서 국선대리인을 함께 신청한 경우도 많았다.
헌재 헌법소원심판은 변호사 강제주의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으면 심판 청구나 수행을 하지 못한다.
다만, 청구인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자력(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헌재에 국선대리인을 선임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심판 청구가 명백히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는 경우 또는 권리남용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신청이 기각될 수 있다.
지난 12일 재판소원제 시행에 따라 확정된 재판이 ▲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 헌법·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재판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사건이 헌재 본안 판단을 받는 건 아니다. 헌재는 사건이 접수되면 우선 지정재판부에서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 판단하고, 청구 요건이 부적법한 경우 본안 심리 없이 각하한다.
헌법재판소법상 청구 이후 30일 이내 각하 결정이 없으면 심판에 회부한 것으로 간주한다.
사전심사 과정에서 걸러지는 기준과 비율이 향후 재판소원 제도 안착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약 한 달 뒤에는 이에 관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헌재도 제도 시행 30일이 되는 무렵 사전심사 통과 여부를 비롯해 보다 자세한 현황을 담은 통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already@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