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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좋은 일자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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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구인수요 주는데 고임금 정규직 집착
정부 유연한 노동 환경 조성이 중요
청년, 경력 선택토록 시장구조 바꿔야
서울경제

한국 노동시장은 기묘한 역설 속에 서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고 기업들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청년층 쉬는 인구는 2025년 50만 4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동시장 미스매치 지수(기업이 원하는 일자리와 구직자가 찾는 일자리 사이의 불일치 정도)는 15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산업은 빠르게 바뀌는데 고용 관행과 제도는 과거에 머문다. 이러한 간극은 노동시장 미스매치를 구조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기업은 시장 상황에 따라 인력을 투입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가 늘어나면 단기 인력을 쓰고 기술이 바뀌면 새로운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용 형태, 근로시간, 임금체계, 생산 의사 결정까지 경직된 노동제도의 틀 안에 묶어 뒀다. 기간제 사용 제한과 파견 규제, 획일적 임금체계, 생산방식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선택지를 좁힌다. 그 결과 기업은 채용을 미루거나 인공지능(AI) 자동화를 택한다. 사람을 뽑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전략이 돼 버린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로봇 밀도는 직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노동시장 관행과 제도가 기업으로 하여금 ‘사람 대신 기계’를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좋은 일자리’에 대한 집착이 역설을 낳는다. 정규직, 고임금, 장기 고용이라는 이상적 모델을 전 산업에 일괄 적용하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부 대기업을 기준으로 설계된 제도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신산업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규제와 비용 앞에서 기업은 규모를 줄이거나 외주화, 해외 이전을 선택한다. 보호를 강화했지만 보호받을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노동 유연성은 결코 해고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고용 형태의 다양성, 근로시간의 선택권, 임금체계의 자율성, 생산의 유연한 결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문제이면서 동시에 구직자의 기회 문제다. 다양한 진입 경로가 있어야 경력의 사다리가 만들어진다. 통계에서도 이 불균형은 뚜렷하다. 실제 구직 환경을 보여주는 구인배수(신규 구인/신규 구직)는 2023년 0.48에서 2026년 0.30으로 지속 하락하고 있다. 이는 노동 수요가 구조적으로 위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좋은 일자리는 더욱 희소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만을 기다리는 전략은 청년층의 구직 기간을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자리를 직접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획일적 보호 대신 공정한 경쟁의 틀을 세우고, 직무 전환과 재교육을 강화하며, 기업이 책임 있는 범위 안에서 인력을 유연하고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호와 유연성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산업과 노동시장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선택지다. 좋은 일자리라는 구호를 넘어 다양한 일자리가 공존하고 이동과 전환이 가능한 노동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채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청년은 기다림 대신 경험과 경력을 선택할 수 있다. 일자리는 보호의 결과가 아니라 작동하는 시장의 결과다. 지금은 그 노동시장 구조를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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