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에 타거나 파괴된 자동차들이 놓여있다. 이스라엘 측은 아이언돔을 이용해 대부분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했지만, 이 과정에서 추락한 미사일 파편 등으로 80대 남녀 2명이 경상을 입었다./AP 연합뉴스 |
미국이 이란 정권의 경제 중추인 하르그섬을 공습하면서, 중동 내 친(親)이란 무장 세력의 보복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란이 중동 전역에서 지원해 온 무장 세력을 통해 미국·이스라엘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제2전선’ 전략을 가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최근 첫 공개 성명에서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적이 경험하지 못했고, 대비가 취약한 ‘제2전선’의 검토가 끝났다”며 “‘저항의 축’ 전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모즈타바가 언급한 이른바 ‘저항의 축’은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예멘 후티 등 반미·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세력을 뜻한다. 이들 활동지역이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 형태로 연결돼 있어 ‘초승달 벨트’로도 불린다. 이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 지난해 미국의 이란 공습 등으로 약화됐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이란에 가세하고 있다. 이란은 이들을 총동원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후방을 교란하며 장기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백형선 |
◇“미·이스라엘 후회하게 만들겠다”
이라크에서는 이미 ‘제2전선’이 본격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4일 수도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 옥상 헬기장에 미사일 한 발이 떨어졌다. 누가 이 미사일을 쐈는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연합 조직 이라크이슬람저항(IRI)의 한 파벌은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IRI는 미군과 미국 정보기관 요원의 위치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1억5000만 이라크 디나르(약 1억60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공격을 예고한 상황이다.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은 보안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고 자국민에게 철수령을 내렸다. 이란 또는 연계 무장 단체가 미국 시민·시설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복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일대에 드론·미사일을 퍼부으며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규군을 능가하는 병력 6만명에 미사일·로켓·드론 1만기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들의 무선호출기에 폭탄을 심어 폭발시킨 ‘삐삐 작전’ 등으로 수뇌부 상당수가 제거됐지만, 지휘 체계를 점조직 방식으로 운영하며 전쟁 지속 능력을 장기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헤즈볼라는 모즈타바가 이란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되자 충성을 맹세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침략 행위를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예멘 후티의 참전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티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홍해를 통과하는 서방 선박을 공격해 왔다. 이들이 본격 가세하면 중동 산유국들이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우회로로 활용 중인 홍해 항행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저항의 축’ 새 핵심 세력으로 후티를 지목하며 “이들이 홍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차단하면 중동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아시아·유럽으로 나갈 수 있는 핵심 우회로가 끊기게 된다”고 했다. 후티 지도자 압둘 말릭 알 후티는 “이란에 대한 공격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전쟁”이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서 이란과 함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란, 걸프 국가 공격말라” 이견도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들 대리 세력을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왕정을 무너뜨린 뒤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 이념을 주변국에 전파한다는 명분 아래 레바논, 이라크, 예멘 등지의 시아파 무장 세력을 집중 육성한 것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무장 세력은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 제2대 하메네이에 이어 집권한 ‘후계자’ 모즈타바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다만 오랜 전쟁 등으로 내부적 결속이 흔들리면서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최근 성명을 내고 “이란의 자위권을 지지하지만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를 겨냥한 군사 공격은 자제해 달라”고 이례적으로 이란에 요청했다. 하마스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을 기습한 이후 2년 넘게 전쟁을 지속하며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과의 휴전 논의를 중재하는 걸프 국가들을 적으로 돌릴 경우 전략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항의 축’
이란이 중동 전역에 구축한 반미·반이스라엘 무장 연합 네트워크. 호메이니 체제가 “혁명 수출”을 기치로 내걸고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예멘 후티,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을 군사·재정적으로 육성하면서 형성됐다. ‘저항의 축’ 명칭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02년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자, 이란이 “우리는 미국 패권에 맞서는 저항의 주체”라고 반박하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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